본문 바로가기

취미/책과 영화

예측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다 - 거의 모든 것의 미래


음침한 집으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공간 한 가운데에 둥그런 탁자를 차려놓고, 그 탁자 한 가운데에는 투명하고 커다란 수정 구슬이 있습니다.
잠시 후 당신의 앞에는 두건이 달린 망토를 쓴 노파가 앉아서 수정 구슬에 손을 얹고 뭐라고 중얼 거립니다.
한참을 중얼 거리며, 수정 구슬을 바라보고 난 노파는 당신에게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지요.

보통 옛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수정 구슬은 주인공에게 미래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신비한 매개체가 되어 왔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모험에 대해, 또는 미래의 남편이 될 왕자님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모든 미래의 모습이 수정 구슬 속에 담겨 있지요.

인간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인류 전체의 미래, 자신들의 국가나 종족의 미래, 가족의 미래, 그리고 개인의 미래까지 모든 미래에 대해서 궁금해했고, 또 그것들을 예측하기 위해서 부던한 노력을 했지요. 신에게 미래를 알려달라고 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기도 했고, 자칭 신의 대리자라는 사람으로부터 미래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복종을 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예언자가 불행한 소리를 하면 저주받은 이로 간주하고 집단적 광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토록 인간은 미래에 대해서 항상 궁금해해왔으며, 지금까지도 미래에 관한 예측은 거의 모든 이에게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내일 소풍을 앞둔 아이들에게는 다음 날 날씨가 어떻게 될 지가 하나의 관심거리일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건강하고 튼튼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 지 궁금해하는 것도 미래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돈을 버는 직장인들에게는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투자를 하면 돈을 많이 모을 수 있을까하며, 예측을 하는 것도 미래에 대한 관심입니다.




소위 과학자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수 세기 동안 미래에 대한 예측을 과학적 모델로 만들어서 예측 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많은 관심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렇게해서 탄생된 여러 가지 과학적 모델들은 때때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정확성에 대해서는 반신반의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나 날씨와 관련된 예측에 대해서는 아마 상당수의 사람들이 미래 예측에 대한 정확성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날씨의 예를 들어 설명을 계속하면, 과학자들은 이처럼 불완전한 예측 시스템에 대해서 '혼돈(Chaos)'라는 것에 의한 영향이다라고 보통 얘기를 하곤 합니다. 나비의 날개짓 한 번이 지구 반대편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는 소위 '나비효과'라는 것을 주무기로 들고 나오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조금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혼돈'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모델' 자체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복잡계'에 대한 전문가이자 응용수학자인 '데이비드 오렐'은 그의 저서인 『거의 모든 것의 미래』를 통해서 미래 예측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제1부 '과거'는 인간에게 있어 영원히 숙제이자 갈망의 대상인 '미래 예측'의 역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제2부 '현재'에서는 미래 예측의 주된 적용 대상으로 '날씨', '건강', '경제'의 세 가지 측면에서 예측과학의 발달 과정 및 최근 연구 현황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3부 '미래'에서는 미래 예측과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책의 분량 자체도 만만치 않습니다. 앞표지부터 뒷표지까지 총 540여페이지에 이르는 꽤 두꺼운 분량의 책인데다, 내용도 일반적인 문학 작품이 아니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처음부터 거부감이 들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책의 서문을 읽고 있으면, 어느 순간 책의 분량에 대한 걱정보다는 빨리 이 책에서 소개하려고 하는 내용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됩니다. 그만큼 주제 자체가 가져오는 호기심이 강렬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책에서 저자가 서술한 부분 중에서 한 가지 흥미를 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혼돈'이라는 개념과 '복잡'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한 가지 용어로 인식을 하고, 비슷하다가 착각을 하게 되는데, 복잡계의 전문가인 저자 입장에서는 이를 명확히 구분 지어주는 대목이 있더군요.

혼돈과 복잡성은 종종 한데 뭉뚱그려지고 혼동되지만 둘은 전혀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복잡계는 초기 조건에 민감하지 않으며, 반대로 혼돈계는 복잡할 필요가 없다. - p.159 -

이 말 한 마디가 어쩌면 미래 예측 과학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과 저자의 인식의 차이를 짚어주는 대목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미래 예측을 위해 만들어진 모델에 대해서 그 정확성이 떨어지면, 나비 효과와 같은 혼돈 이론을 예로 들지만, 사실은 미래 예측이 잘못된 것은 복잡한 세상에 대한 정확한 복잡계 모델이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나름 과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도 헷갈리고 있던 사실을 정확히 꼬집어 준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책과 관련된 참고문헌과 주석들, 그리고 본문에 사용된 용어와 관련된 내용이 부록으로 제공되면서, 조금 고난이도의 교양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딱 안성맞춤인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참고문헌은 책 뒤로 빼더라도, 각 용어 자체에 대해서는 본문이 위치한 페이지에 바로 표기를 해두었다면 책을 뒤로 넘겼다, 다시 앞으로 넘기는 수고를 하며 몰입에 방해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구성상의 아쉬움도 눈에 띄네요.

책의 내용과 관련된 약간의 과학적, 수학적 사전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읽는다면 충분히 도움이 되는 내용이겠지만, 문학에만 익숙한 독자들이 읽기에는 약간의 지루함이 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살짝 드네요.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