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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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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를 다시 만나다. 작년 이 맘 때쯤, 덕수궁 미술관에서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거장전'을 보면서 주의 깊게 보아둔 작가가 있었다. (관련 글 보기)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콜롬비아 출신의 화가로 현재도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다. 작년에 찾아 왔던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에서는 그의 작품을 많이 볼 수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 그리고 그의 작품이 한국을 다시 찾아오는 날에는 꼭 반드시 보고 말리라 다짐을 했는데, 생각보다 그 기회가 빨리 오게 되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과장되게 뚱뚱하게 표현되어 있다. 턱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꺼운 목살에 살이 덕지덕지 붙은 큼지막한 엉덩이, 도저히 꼬아지지 않을 것 같은 두꺼운 종아리는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이 되.. 더보기
고종의 '덕혜 옹주' 사랑이 깃든 곳 : 덕수궁 준명당 덕수궁(경운궁)은 대한 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쓸쓸한 만년을 보낸 궁궐로 기억되고 있다.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기고 왕위조차 강제로 물려준 채로, 힘없는 나날을 보내던 고종에게 뒤늦게 낛이 하나 생겼다면, 바로 '덕혜옹주'의 탄생일 것이다. 다음은 실록에 나오는 '덕혜옹주' 관련 기록이다. 「덕수궁(德壽宮) 궁인(宮人) 양씨(梁氏)가 딸을 낳았다. 양씨에게 당호(堂號)를 내려 복녕(福寧) 이라 하였다.」 「태왕 전하(太王殿下)가 복녕당(福寧堂)에 왕림하였다. 이희 공(李熹公) 이하 종척(宗戚)과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차관(次官) 칙임관(勅任官) 이상 및 내빈(內賓)을 인견(引見)하고 이어 사찬(賜饌)하였다. 새로 태어난 아지(阿只)가 삼칠일(三七日)이 되었기 때문이다.」 「복녕당 아기(福寧堂阿只.. 더보기
답사의 매력 - 조선의 궁궐 이야기를 시작하며 혼자서 조용하게 걸어다니며 여유로움 속에서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또 때로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사색에 잠기거나 달콤한 상상에 빠지는 즐거움. 거기에 지식의 수준까지 저절로 깊어지게 만들어주는 이득까지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 매력에 사로잡힐만 하지 않은가?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서 몸과 마음을 쉬고 있으면 저절로 스트레스까지 해소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답사는 나에게 있어서 청량제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답사의 시간을 '내 영혼이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취직을 위해 서울로 영어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면 집이 있는 수원으로 바로 돌아가는 대신 학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다니곤 했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그냥 가버.. 더보기
조선 궁궐의 숨겨진 이야기 속으로 ... 경복궁, 창덕궁, 경운궁(덕수궁), 창경궁, 경희궁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 시대의 다섯 궁궐의 이름이다. "서울에 저렇게 많은 궁궐이 남아 있어?"라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사실이다. 다만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이 많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원인에는 일제 시대 때 철저하게 우리 문화를 파괴했던 아픈 역사와 해방 후에도 이어진 무관심이 한 몫 거들고 있다. 우여곡절을 겪은 통에 제 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 뿐더러, 남아 있는 궁궐 건물의 대부분이 현대에 와서 복원된 모습이지만, 그래도 조선의 궁궐은 엄연히 우리의 곁에 남아 있는 소중한 문화 유산이다. 복원된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 그마저도 제자리에 복원되지 못하였다. 궁궐에 관심을 갖고서 한 동안 궁궐에 .. 더보기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