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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전시회/문화재/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기자

재미있는 돋보기 : 호우명 청동그릇


광복 이후 우리 손으로 발굴한 첫 번째 유물!

 오늘 재미있는 돋보기에서 소개해 드릴 유물은 '호우명 청동 그릇'이라는 유물입니다.

 역시나 교과서나 시험 문제에서 자주 출제되어 나오는 유물인지라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유명한 유물이겠지요.
 박물관을 방문하면서 얻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책에서만 보아오던 귀중한 유물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호우명 청동 그릇'이라는 이름은, 이 청동 그릇 바닥에 16자의 글씨가 적혀 있는데, 그 중에서 '호우'라는 글자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그릇이 출토된 무덤의 이름도 덩달아서 '호우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이 그릇이 출토된 '호우총'은 광복 이후에 우리가 주도한 첫 번째 발굴 조사의 대상이 된 유적이랍니다.
 물론 그 이전에 일제 시대에도 유물 발굴은 이루어졌으나, 대부분 총독부의 명령을 받아 일본인이 조사하거나, 그도 아니면 불법적으로 도굴되어 버린 것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러다가 당시 국립박물관(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의 초대 관장이던 김재원 선생이 주도하여 1946년 5월 첫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당시 명칭으로 '노서동 140호 고분'이었던 이 무덤에서 첫 발굴치고는 꽤 의미있는 유물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 유물이 발굴됨으로 인해서, 일본이 주장해오던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물증을 확보하게 된 것이죠.


고구려의 유물이 신라의 땅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그릇에 새겨진 글씨가 어떤 뜻을 나타내기에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그릇에 새겨진 명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청동 그릇의 바닥에는 총 16 글자가 4글자씩 오른쪽 위부터 세로쓰기로 쓰여져 있습니다.
 한자로 적힌 글자를 알아보기 쉽게 한글로 옮기면,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이라고 적혀 있네요.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이미 '광개토'라는 글씨만 보고서도 고구려의 유물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을묘년'은 광개토대왕의 장례를 치른 다음해이고,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이라는 글자는 '광개토대왕릉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왕의 묘호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글자는 '호우십'이라는 글자인데요. 학자들은 '호우'라는 것이 이러한 형태의 청동 그릇을 나타내는 명칭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청동그릇은 '광개토대왕 사후에 중요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그릇이며, 그 중에서 10번째로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도 의문점은 남아 있습니다.

 그릇에 새겨진 글씨체가 광개토대왕릉비에 새겨진 글씨체와 같다고 하니, 틀림없이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유물인 것은 확실한데,
 도대체 왜, 고구려의 유물이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한 복판에서 발견이 된 것일까요? 그것도 무덤 안에서...

 광개토대왕릉비에는 경주까지 침범한 왜구를 고구려군이 격퇴를 해주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광개토대왕 시절 신라가 고구려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당시 고구려의 왕이 신라의 왕이나 귀족에게 일종의 하사품으로 이 그릇을 건네주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것이 사실이라면, 일본이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는 '임나일본부설(삼국시대에 왜가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백제, 신라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했다는 일본의 주장)'은 당연히 거짓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유물발굴에 도움을 준 일본인 '아리미스'

 호우총을 발견할 당시에 우리 나라에는 소위 말하는 '발굴 전문가'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이 주도해서 발굴을 진행했으며, 그 과정을 철저히 자기들만이 공유했다고 하네요.
 그러다보니, 막상 우리 나라 사람 중에는 발굴 전문가가 전혀 없게 된 것이지요.

 광복 후 첫 발굴이었던 '호우총 발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때, 발굴단에 도움을 준 이가 바로 '아리미스'라는 일본인이었답니다.

 사실 광복 이후에 일본인들은 패망의 책임을 안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당시 박물관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했기에, 관련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가 끝날 때까지 한국에 남아 있어야만 했던 사람 중의 한 명이 바로 아리미스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군정과 한국인들의 감시 아래에서 인질처럼 잡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성실하게 발굴에 임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발굴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전수해 주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호우총에서 발굴된 유물의 중요성으로 볼 때, 일본인인 그가 유물에 허튼 짓을 했다면, 돌이킬 수 없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는 성실하게 발굴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임나일본부설'을 잠재울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 '일본인'의 도움으로 발굴되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지요? ^^


호우명 청동 그릇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오늘 소개해드린 '호우명 청동 그릇'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1층에 위치한 고구려실에 위치해 있답니다.

 유물이 전시된 곳 근처에서는 현재 '고구려의 산수와 사신'이라는 주제로 '진파리 고분벽화 모사도'도 함께 전시되어 있답니다. 7월 25일까지 전시 예정이니, 호우명 청동 그릇도 보러 가고, 특별한 고분벽화전도 함께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 전시 유물은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명예기자 이귀덕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박물관은 살아 있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