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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전시회/문화재/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기자

재미있는 돋보기 : 장승업의 '삼인문년도'


당신 나이가 몇이오?

 오늘 소개할 유물은 오원 장승업의 '삼인문년도'입니다.
 작품명이 어렵나요? 한글로 써 놓고 보니 무슨 뜻인가 싶기도 한데, 한자로 써보면 아주 쉬운 기초 한자들이랍니다.

 '삼인문년도(三人問年圖)', '세 명의 사람이 서로 나이를 묻는다'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의 나이를 묻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구나라고 쉽게 이해가 가시죠. ^^

삼인문년도(三人問年圖)



 그런데,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서로 나이를 묻고 있는 모습. 보통 이런 모습이라고 하면,
 영어회화 책이나 시험 문제에서 대화를 설명하는 그림으로 나오거나, 무슨 TV 광고 속의 한 장면으로 나올 것 같은데요.
 이런 그림이 우리 조상의 옛 그림 속에서 나왔다니, 어떤 사연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당신이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라고? 웃기시네!

 이 그림을 보면, 화면 중앙에 세 명의 노인이 있습니다. 얼핏봐도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 세 분의 노인들이 바로 '나이싸움'의 주인공이신 분들이랍니다.

 보통 "너 몇살이야?" 또는 "너 몇학년이니?"하는 것들은 어린 아이들끼리 싸우기 전에 묻는 말인데요. 나이도 드실만큼 드신 노인분들이 '나이'가지고 다투시고 계신답니다. 그것도 거의 뻥에 가까운 수준의 부풀리기를 하면서 말이죠.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한 분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다른 한 분은 바닷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분은 손에 복숭아를 들고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나이 싸움을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들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사실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지은 '동파지림'에 나오는 고사 속의 노인들이랍니다.

 고사 속에서 노인들은 다음과 같이 싸웁니다.

 "아이구~ 난, 내 나이는 잘 모르지만, 어렸을 적에 천지를 만든 '반고'씨와 친하게 지내던 생각은 나는 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바다가 메워져서 뽕 밭으로 변할 때마다 숫자 세는 나뭇가지를 하나씩 집에 두었더니, 벌써 열칸짜리 집이 나뭇가지로 가득 찼지 뭐야."

 "흥! 어린 사람들 같으니. 나는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를 하나씩 먹고, 그 씨를 '곤륜산' 아래 버렸는데, 지금 그 씨가 쌓여 곤륜산이랑 높이가 똑같아졌어."

 아이구, 정말 대단한 뻥쟁이 분들 아니신가요? ^^
 서로 누가 더 나이를 더 먹었는지 우기기 위해서 온갖 비유를 다 갖다 붙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제 세 노인이 각각 어떤 분인지 구별이 가시죠?
 바로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노인이 처음에 이야기를 꺼낸 이고, 바닷가를 가리키고 있는 노인이 두 번째로 이야기한 사람이며, 복숭아를 들고 있는 노인이 마지막에 이야기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화면을 자세히 보시면, 이야기에 등장하는 바다, 열칸집, 복숭아 나무 등도 확인할 수 있답니다.

그림 왼쪽 아래를 보면, '상전벽해'가 일어날 때마다 나뭇가지를 쌓아두었다는 집도 보입니다.



 싸우고 있는 노인들의 오른쪽을 보면 두 마리의 사슴이 보입니다.
 마치 빨리 만나서 놀고 싶은데, 중간에 할아버지들이 싸우고 있어서 멀리서 쳐다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둘이서 할아버지들을 흉보는 것 같기도 하네요.

사슴 두 마리가 할아버지들을 사이에 두고 서로 쳐다보고 있네요.




'전(傳)'이라는 글자는 왜 붙는가?

 이 작품의 유물 설명을 자세히 보시면, "전(傳) 장승업"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장승업이 그렸으면, 그냥 '장승업'이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전할 전(傳)'자를 앞에 붙여서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물 설명을 보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쉽게 넘어가 버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림 설명에 나온 '전(傳)'이라는 글자는 왜 나왔을까요?



 회화 작품 등을 감상하다보면, 특히나 이 '전'자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작품의 확실한 작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양화의 '서명'에 해당하는 동양화의 '낙관'이 있어야 비로소 그 작가의 작품이라고 100% 인정해 줄 수 있는 것인데요. 전해지는 유물들 중에 상당 수는 낙관이 유실된 경우가 많답니다.

 하지만, 낙관이 있는 경우에도 가짜가 있을 수 있는 마당에 하물며, 낙관이 없는 경우에 해당 작가의 작품이라고 100% 말하기에는 힘이 들게 됩니다.
 그래서, 해당 유물을 보관해온 내력 및 다른 작품과의 유사성 등을 통해서 해당 작가의 작품임이 거의 확실하지만 낙관이 없는 경우, 해당 작품에는 작가 이름 앞에 '전(傳)'자가 붙게 되는 것입니다.


장승업의 '삼인문년도'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오늘 '재미있는 돋보기'의 주인공인 '삼인문년도'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에 위치한 '회화실'에 전시되어 있답니다.
 회화실에는 멋진 유물들이 많이 있으니, 천천히 둘러 보시면서 조상들의 숨결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특히나 회화실의 작품들은 주기적으로 교체되고 있기 때문에, 한 번 놓치면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니, 작품 하나하나를 보실 때마다 찬찬히 살펴보는 감상 방법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



* 전시 유물은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명예기자 이귀덕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박물관은 살아 있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