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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전시회/문화재/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기자

재미있는 돋보기 : 손기정의 투구


서양 유물이 우리 나라 보물!!

 보물 또는 국보라고 하면 당연히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문화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유물은 우리의 전통과는 거리가 아주 먼 유물이랍니다.

 이웃 나라였던 중국이나 일본의 유물도 아니고, 머나먼 그리스의 유물인데요. 바로 서양 문명의 발상지처럼 여겨지는 그리스의 유물이 우리 나라의 보물로 등록되어 있답니다.

 그 사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


보물 904호 : 그리스의 고대 청동 투구

 보물904호로 지정된 유물은 바로 우리 나라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생님이 기증하신 고대 그리스의 청동 투구랍니다.

고대 그리스의 청동 투구 : 보물904호



 1875년에 독일의 고고학자가 제우스의 신전에서 발견했다고 알려진 이 투구는 '코린트식 청동 투구'라고 합니다. 얼굴뿐만 아니라 목 부분도 보호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이 투구는 기원전 8~7세기 경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 유물이라면 당연히 그리스나 발굴한 독일에 전시되어야 할텐데, 현재 우리 나라의 보물로 당당히 지정되어 있는 이유는 이유는 다음과 같답니다.

 1936년 올림픽이 열린 곳은 아돌프 히틀러의 나찌가 정권을 잡고 있는 독일베를린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우리 나라는 일본에 강제로 합병이 되어 나라조차 잃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일본은 베를린 올림픽에 우리 나라 선수를 '일본 선수'로 등록시켜 출전시켰답니다.
 그리고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라톤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단 우리의 선수들은 1위와 3위를 차지했습니다.

앞에서 본 투구의 모습



 1위를 차지한 손기정 선수와 3위를 차지한 남승룡 선수의 가슴에는 우리의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그려져 있었고, 서양 사람들 눈에는 작은 일본인 두 명이 큰 일을 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는 않았겠지요.

 당시 1위를 한 마라토너에게 부상으로 주어진 것이 바로 이 '그리스 고대 청동 투구'였답니다.
 손기정 선수는 당당히 1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투구를 받지 못했답니다. 여기에는 일본의 방해가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조국을 잃은 슬픔을 딛고, 당당히 1등으로 들어온 손기정 선수는 일장기를 달고 시상대에 오르는 치욕을 겪는 것으로도 모자라 당연히 받았어야 할 부상도 받지 못했었답니다.

 결국 주인을 찾지 못한 이 투구는 독일올림픽위원회가 소장하여 베를린박물관에 보관해 오다가 1986년 베를린 올림픽 50주년을 기념하여, 그리스의 부라딘 신문사의 주선을 통해서야 결국 손기정 선수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답니다.

 투구를 전달받은 손기정 선수는 "투구는 개인의 것이 아닌 민족의 것이고, 국민에게 긍지와 청소년에게 꿈과 투지를 심어주기 위해 국가에 기증한다"는 말과 함께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답니다.

 그리고 투구는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이 되어, 서양 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로 지정이 되었답니다.
 물론 학술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이 유물에 담겨 있는 정신적 가치야 말로 이 투구를 '보물'로서 더 빛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승 테이프를 끊고 탈의실로 향하는 손기정 선수.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걷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 동아일보)



 최근 들어 일본이 다시 한 번 왜곡된 역사 교과서 발행 및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하고 나서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지 못하고, 심지어 잘못된 역사의 기억조차 지워버리려 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가 됩니다.

 우리의 역사적 아픔을 안고 있는 소중한 유물들이 이렇게 버젓이 남아있는데도 말이죠.


손기정의 투구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오늘 소개한 유물인 손기정 선수의 투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2층에는 기증문화재를 모아 놓은 '기증관'이 있는데요.
 손기정 선수가 기증하신 투구도 이 곳에 전시되어 있답니다.

 개인의 힘으로 지키고 보존해 온 문화재를 후손들을 위해 아낌없이 기증한 많은 분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지요.
 이 곳에서 우리 문화재 사랑의 마음을 다잡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전시 유물은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명예기자 이귀덕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박물관은 살아 있다.]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