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 400년 전시회
푸생에서 마티스까지
전시 장소 :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 기간 : 2004년 12월 21일 ~ 2005년 4월 3일
2004년 겨울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는 아주 특별한 미술 전시회가 한국을 다녀갔었다.
프랑스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루브르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랭스미술관을 비롯한 프랑스의 국공립 미술관에 전시되던 작품들이 한국 나들이에 나섰던 것이다.
2005년 봄까지 진행되었던 이 전시회에서는 니콜라스 푸생(Nicolas Poussin)으로 대표되는 17세기부터,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앙리 마티스(Henry Matisse) 등으로 대표되는 20세기까지의 서양 미술사를 일목 요연하게 볼 수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전시회로 진행이 되었다.
전시회의 주제는 '선과 색의 위대한 논쟁'이다.
17세기의 니콜라스 푸생을 주축으로 한 '선'을 중시한 화파와 피에르 루벤스(Pierre-Paul Rubens)처럼 '색'을 중시한 화파의 양립으로 부터 이 논쟁은 시작되었다.
다양한 미술사조가 등장한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선을 통한 명확한 형태와 균형 잡힌 조형미를 추구한 신고전주의와 강렬한 색채의 동적인 그림을 주로 그린 낭만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이어지게 된다.
전시회를 통해서 이러한 작품들을 가까이서 살펴보고, '선'과 '색'의 대립을 느낄 수 있었던 기회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전시회는, 17세기 절대왕정 아래에서 꽃피운 바로크 양식부터 자유로운 화풍의 20세기까지의 서양 미술사를 차례대로 살펴볼 수 있어서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던 그림들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이벤트에 당첨되서 받은 초대권
전시회가 개최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너무나도 관람하고 싶었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이래저래 미루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협력없체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개최한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 공짜 티켓이 2장이나 오게 되었으니, 어찌 안 가겠는가?
초청권이라서 날짜 제한이 있었다. 기한이 끝나기 전에 어서 보고싶은 마음에 다른 약속을 모두 제쳐두고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술관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자 매표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휴일에 찾아가서 사람들이 많을까봐 많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그때까진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매표소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여유롭게 지나쳐 오며, 가지고 온 초청권을 뽐내며 들어갔다. (여담이지만 확실히 초청권이 좋기는 좋았다. 4시쯤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을 나올 때에는 매표소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약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는데, 그날 나처럼 초청권을 가져온 사람들은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자 어두운 톤의 조명들이 전시회장 안을 비추고 있었고, 드디어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림들이 눈에 하나 둘 씩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전시회장 안은 기하급수적으로 사람들이 늘어갔고, 급기야 나중에는 사람들에 치여서 제대로 그림을 감상할 수 조차 없게 되었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꿋꿋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
전시회 주최측에서 관람객수를 제한하며 천천히 입장시켰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러한 미숙한 점들이 조금 눈에 걸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대가들의 훌륭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좋은 경험으로 남기에 충분하였다.
<마라의 죽음> - '자크 루이 다비드'
교과서를 통해서 한번씩은 보았을 너무나도 유명한 그림이다.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마라의 얼굴을 보게 되면, 죽은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너무 아름답게 표현되어, 나는 한동안 '마라'가 여자인 줄 알고 있었다. ^^)
마라는 프랑스 혁명기의 시민측에서 활동했던 정치가 인데, 평소에 귀족들을 강력하게 처벌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혁명가였다. 당시 마라는 고질적인 피부병을 달래기 위해서 욕조에서 반신욕을 하면서 집무를 보곤했다. 사건 당일도 욕조에서 집무를 보던 마라는 몰락 귀족 출신의 한 소녀의 갑작스러운 침입과 동시에 가슴에 칼을 찔려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된다. (이 소녀는 그 후 붙잡혀서 교수형 판정을 받은 날 처형된다.)
그런데 나는 처음 이 그림을 접했을 때, 위에서도 말했듯이 죽은 사람이라는 느낌 보다는 잠들어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그림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당시에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다비드는 이 사건이 일어나자 마자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 제일 먼저 마라의 얼굴에 액체 석고를 발라 '데스 마스크(Death Mask, 죽은 이의 얼굴을 석고 반죽을 이용해 본형을 뜬 것)'를 만들었고, 이어 그림에서 나타난 깃펜과 범행에 사용된 칼을 챙겼다. 더군다나 후에, 욕조까지 자신의 화실로 옮겼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장인 정신이라고 밖에는... 솔직히 이 이야기를 듣고 '다비드가 정신병자는 아닐까'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마라의 팔을 보면 욕조 밖으로 나와 길게 늘어져 있다. 당시의 그림들에서 팔을 추욱 늘어뜨린 것은 순교자들의 그림 속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다 주변의 배경을 그려서 '사건'에 초점을 두고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어떠한 배경도 두지 않고 오직 욕조와 '마라'만을 그림으로써 '마라'라는 인물을 부각 시켰다. 이 때 다비드는 '마라'를 일종의 순교자로 만드려고 한 듯 보인다.
<대본 낭독> - '오귀스트 르누아르'
이 그림은 얼핏 보면 사랑을 속상이고 있는 두 남녀 앞에 한 남자가 다가와서 무언가 말을 하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 그림 속의 여자는 당시 '배우'의 직업을 갖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글을 읽지 못하여 대본을 읽을 수가 없어서, 대본 읽어주는 사람을 대동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대본을 반복해서 읽게 하고, 그것을 외워서 익히고 있는 모습이다.
사실 이 그림과 관련해서는 예전에도 설명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 다지 새롭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정말 놀라운 사실이 있었는데, 바로 실제 그림의 크기가 지금 위쪽의 사진 속에 있는 그림과 거의 크기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지갑속에 쏙 들어가는 명함보다 크기가 약간 작아 보였다. 보통 그림하면 적어도 초등학생들이 사용하는 도화지 정도 이상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 역시 커다란 초상화이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 그림의 크기를 보고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작은 공간안에 그토록 정밀하게 색의 기교를 발휘하여 그림을 그려낸 '르누아르'의 그림 솜씨이다. 정말 훌륭하다고 칭찬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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