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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책과 영화

패자의 역사 by 구본창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던가.
승자에 의해 정복당해지고, 멸망당하고, 또는 승자에게 위해를 가했던 존재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서술되는 것이 역사인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기록으로서의 역사'일 뿐이다.

사실, 당시의 살던 사람들이 아닌 이상은 그 시대의 상황을 100% 이해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역사 연구가가 과거의 일을 들추어내는 '역사학'은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더듬어가는 일 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자신을 제외한 주변 변방 국가를 '오랑캐'라는 이름으로 통틀어서 규정해 버리고, 자신들에게 대적한 악의 무리로 역사서에 기록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같은 왕조 내에서도 왕권이나 지배 계층에 대한 반발은 무조건 '반란'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만 봐도, 기록이라는 것이 승자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패자의 역사 by 구본창



<패자의 역사>(구본창 저)는 말 그대로의 패자의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신라의 삼국 통일을, 통일이 아닌 단순한 신라의 영토 확장이며,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가 아닌 당나라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현재 주류 사학계의 의견에 전격적으로 반박하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주류 사학계가 인정하고 서술하는 역사 조차도 승자의 기록이라는 저자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너무 파격적이면 과격하게 느껴지는 법. 너무 '좌파적'인 모습에서만 역사를 바라보는 것 같이 느껴져서, 저자가 우려하는 '우파 편향적' 역사 인식과 보는 차원만 다르지 서술 방식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다고 느끼기에는 어려운 것 같다.




'패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재서술한다는 것 자체가 통념적인 역사관을 삐뚫어지게 쳐다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책의 서술이 보수적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과격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음에 있어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승자 서술의 역사'에 반박할 수 있는 '패자 서술의 역사'를 통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적인 감각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책들이 많이 나올 수록 현재 편향적인 '승자 관점에서의 역사' 못지 않게, '패자의 역사', '숨겨져 왔던 역사', '역사서에서 다루지 못해왔던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단, 이 경우에는 독자에게 사실과 기록을 구별해서 판별해 낼만한 최소한의 '여과 기능(filtering)'이 갖추어지 않았을 경우 역시 편협한 시각을 키우게 될 우려가 있음을 주의해야 하겠다.


과거의 인물들이 죽어서 서로 만나 대화를 하는 부분에선 약간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역사를 비교하는 글도 중간중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