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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공연 이야기

뮤지컬 '네버 엔딩 스토리'


 최근 서울의 작은 공연장 하나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뮤지컬을 보는 사람들 사이의 입소문을 통해 한달전부터 예매 이벤트를 실시하며 기대를 모으던 뮤지컬 '네버 엔딩 스토리'가 막을 열었기 때문이다.

 2호선 삼성역 근처에 위치한 작은 공연장 '백암아트홀'에서 2006년 7월 14일부터 오픈런으로 공연하는 뮤지컬 '네버 엔딩 스토리'를 잠시 살펴 보기로 하자.


진부한 사랑 이야기, 하지만 끝나지 않을 이야기

 뮤지컬 '네버 엔딩 스토리'는 네 남녀간의 엇갈린 사랑이라는, 어찌보면 진부한 스토리를 노래한다. 힘든 생활을 하지만 그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인범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친구인 현정과의 하와이 여행을 준비하고 자신의 생일날 현정을 만나지만, 까페에서 만난 현정은 매몰차게 이별을 선언하고, 이별 선언에 당황하던 인범은 급기야 쓰러지고, 바로 뒷 테이블에 있던 가영은 7년간 사귀었던 종진에게서 이별을 선고받는다.

 병원으로 옮긴 인범은 의사인 종진으로부터 6개월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현정은 이별 얘기는 없던 것으로 하고 치료부터 하자고 하지만, 인범은 결국 현정을 떠나보내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한편 이별을 선고당한 가영에게 갑작스레 복권 당첨의 행운이 찾아오고, 복권 당첨금으로 떠나게 되는 하와이 여행에서 홀로 떠나온 인범과 만나게 되는데...

 어찌보면 너무나 진부하다 못해 드라마에서도 수십번은 다뤘을 3류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뮤지컬의 묘미는 무대라는 공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두 커플에게 일어나는 일을 오버랩해서 보여주는가 하면, 동시에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재치있게 꾸며내는 데에 있다. 특히 코러스로 나오는 4명의 남녀가 공연 내내 이 사람 저 사람으로 변하며 1인 다역 연기를 하게 되는데, 이들의 코믹 연기가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

 이번 뮤지컬에서는 유난히도 우리가 많이 봐왔던 얼굴들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어린이 프로그램인 '방귀대장 뿡뿡이'에서 짜잔형으로도 인기를 모았던 탤런트 권형준이 인범 역에 캐스팅 되었고, '불멸의 이순신' 등의 사극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탤런트 안홍진과 가수 'Y2K' 출신의 고재근이 종진역에 더블캐스팅 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뮤지컬 '네버 엔딩 스토리' 출연진



아직은 시작에 불과한 '끝나지 않을 이야기'

 뮤지컬 '네버 엔딩 스토리'는 정통 뮤지컬보다는 '락뮤지컬'에 가깝다. 뮤지컬을 전체적으로 끌어가는 것이 노래라기 보다는 주인공들이 주고 받는 대사이다 보니, 공연을 다 보고 나면, 뮤지컬 보다는 화려한 연극 한편 보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뮤지컬이라고 하면, 공연을 대표할 만한 '뮤지컬 넘버'가 한 두개 쯤은 있는 법인데, 공연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흥얼거릴 만한 노래가 별로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또한 무대가 전부 빛의 반사를 잘 일으키는 재질들로 되어 있는 탓인지, 무대 가까이에서 보고 있으면, 무대 벽면과 측면에서 비춰 보이는 배우들의 모습들로 시선이 분산되어 어쩐지 집중하기가 어렵다.

 스토리 자체가 '진부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인지, 공연 내내 코러스의 대사를 통해서 '3류 스토리', 또는 '이 뮤지컬'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 역시 불만스러운 점이다. 뮤지컬을 통해서 관객과 하나가 되는 것은 좋은 시도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를 통해서 관객이 뮤지컬 속으로 들어가야 진정으로 재미있는 공연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네버 엔딩 스토리'는 공연에 몰입해서 볼 만하면, 코러스의 대사를 통해, "이 것은 뮤지컬이다."라는 느낌을 주어 어느샌가 몰입을 방해해 버린다. '진부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에 불안했는지, 아니면 지루해할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한 요령인지는 몰라도 오히려 스토리 전체적으로 보면 몰입을 방해하는 가장 강한 요소라고 지적할 수 있겠다.

 '진부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서 너무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만 하더라도 가문의 대립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꿈꾸는 두 남녀의 이야기, 정말 얼마나 진부한가.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전혀 퇴색되지 않고, 각종 소설, 영화, 뮤지컬, 연극 등으로 각색되고 공연되며, 아직도 끝이 없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물론 한술 밥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브로드 웨이나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흥행하는 공연들도 처음부터 흥행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공연을 거듭하면서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음악을 바꿔가면서 최고의 뮤지컬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의 새 획을 긋겠다는 각오로 나온 뮤지컬 '네버 엔딩 스토리', 물론 지금도 좋은 공연임에는 틀림이 없다. 공연을 보는 관점이 저마다 다르기에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뮤지컬로 기억될 수도 있는 것이다.

 뮤지컬 '네버 엔딩 스토리'가 더욱 더 좋은 공연으로 발전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서 또 하나의 대표 한국 뮤지컬로 거듭날 것을 한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