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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공연 이야기

뮤지컬 '드라큘라 (Dracula)'



 해년마다 여름만 되면 TV에서는 줄기차게 납량 특집물들을 기획해서 보여주곤 한다. 그 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은 '전설의 고향' 시리즈의 단골손님 구미호, 두팔을 앞으로 쭉 뻗고 콩콩 뛰어 다니던 강시, 아름다운 여자를 유혹하여 목덜미를 물어 피를 빨아 먹던 흡혈귀 등 하나같이 어린 시절 기억에는 너무나도 무섭고 끔찍해서 이불 속에 숨어서 봐야만 했던 괴물들이었다. 그러다가 어린 마음에 혹시나 진짜로 나타날까봐 각각의 귀신들을 퇴치하는 방법까지 줄줄 외우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흡혈귀 전설은 마치 전염병처럼 물리면 자신도 흡혈귀가 되어 다른 사람을 해치고 다니게 된다는 흥미 거리 때문에 수 많은 세월 동안 소설과 영화로 각색되어왔다. 바로 이 흡혈귀 전설을 퍼뜨리게 만든 장본인이자 흡혈귀의 대명사로 알려진 '드라큘라'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렇다고 목을 움츠려들며 무서워할 필요까지는 없다. '흡혈귀 드라큘라'가 아니라 '인간 드라큘라'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 '드라큘라'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이었던 '드라큘라'

 루마니아 왈라키아의 영주였던 '드라큘라 백작'은 실존 인물로서 전쟁에서 진 포로들을 아주 잔인하게 고통을 주면서 죽이는 것은 물론 왈라키아를 공포 정치로 다스렸던 사람이었다. 루마니아어로 'Dracul'은 용이란 뜻인데, 바로 드라큘라 가문의 상징이자 아버지가 받은 작위가 'Dracul'이었고, 거기에 루마니아어로 '~의 아들'이라는 뜻의 '(e)a'를 붙여서 자신의 이름도 'Dracula'라고 불렀다.

왈라키아의 영주였던 '드라큘라(Dracula)'



 비록 후세에는 괴물로 형상화되고 공포의 화신으로 조장되어 있지만, 사실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드라큘라 백작은 오스만투르크의 군대를 무찌른 훌륭한 장수로 남아 있다. 어찌보면 그의 잔인함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가문과 영지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뮤지컬 '드라큘라'

 성당을 약탈하고 사제와 신부를 죽인 댓가로 '평생을 죽지 않고 피에 굶주리라'는 저주를 받게되는 드라큘라. 그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 '아드리아나'는 해산이 다가오지만 몸이 약한 탓에 드라큘라가 성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되고, 결국 아내와 아이를 모두 잃은 드라큘라는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저주로 인해 죽을 수 없게 된 몸을 가진 드라큘라는 시녀의 피를 빨아 먹으면서 점점 피에 굶주리게 된다.

드라큘라의 품에서 죽어가는 아드리아나



 그리고 세월은 한참동안 흘러 아드리아나를 잊지 못하고 사는 드라큘라에게 그의 먼 친척 로레인이 찾아 오고 다시 사랑을 하게되는 드라큘라. 그러나 로레인을 구하러 온 오빠는 드라큘라가 불사의 존재인 것을 알고 충격을 받고 자살을 하고, 사랑에 빠진 로레인은 이에 아랑곳 않고 오히려 드라큘라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한 의식을 거행한다.

 또 다시 세월은 흘러 현대 런던. 런던으로 이주한 드라큘라는 카지노를 운영하고, 카지노를 호시탐탐 노리는 불량배 일행 중에 '산드라'라는 여성은 아드리아나와 아주 똑같은 용모를 가지고 드라큘라를 유혹하는데...

 괴물로서의 삶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공포물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드라큘라의 사랑과 저주 받은 운명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 '드라큘라'는 특색 있는 뮤지컬 작품이다. 커다란 본 무대와 리프트로 오르내리는 작은 방의 두 부분을 오가며 진행되는 점도 재미있지만, 극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오가며 화려한 무용을 하는 무용수들의 춤 동작이며, 그림 속의 사람이 진짜 사람으로 바뀌는 구성 등이 이 작품의 큰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무용수들의 현란한 몸짓을 보고 있노라면, 뮤지컬과 발레 공연을 동시에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곤 한다.

피의 의식을 거행중인 로레인과 현란한 동작의 무용수들



 뮤지컬하면 음악적인 요소를 빼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데,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다가오는 원곡이 훌륭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원곡인 체코 버전의 OST와 비교하며 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한글화시킨 한국 공연에서의 노래들도 귓가에 쏙쏙들어온다. 특히 아드리아나가 초상화 속의 드라큘라와 듀엣으로 부르는 노래와 산드라의 등장으로 인해 드라큘라에게 버림받은 로레인이 부르는 노래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곡들이다. 또한 뮤지컬 전체에서 감초처럼 등장하는 흡혈 요정들의 노래 역시 빠질 수 없다. 때로는 질투하고 시기하다가 극 종반부에는 버림받은 로레인을 보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간드러지게 부르는 흡혈 요정들을 보고 있으면 밉다기 보다는 차라리 귀엽다.


'드라큘라' 한국공연

 1995년 체코 프라하에서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를 투어하며 공연중인 뮤지컬 '드라큘라'는 1998년 예술의 전당에서 한국 초연을 했으며, 2000년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두 번째 한국 공연에서는 가수 '신성우'가 드라큘라로 발탁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00년에 김성기(드라큘라), 이소정(로레인), 김선경(아드리아나)이 출연한 공연 영상은 현재까지도 뮤지컬을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한전아트센터에서는 2006년 4월 22일부터 신성우, 이종혁, 신성록 (이상 드라큘라), 양소민(아드리아나), 윤공주(로레인)의 열연으로 공연이 진행중에 있다.

뮤지컬 '드라큘라'가 공연중인 한전아트센터 앞 휴식터



 서초동 전력문화회관에 위치한 '한전아트센터'는 대학로 공연이나 '예술의 전당', 또는 '세종문화회관'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생소한 곳일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공연장을 찾았을 때 관객 점유율이 생각보다도 많이 낮은 것은 약간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훌륭한 공연에 찾아 오는 관객 수가 적은 현실은 비단 대학로 소극장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었다. 초대형 공연이나 스타배우들이 출연하지 않으면 실상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우리 나라의 공연계 현실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세차례나 한국에서 공연된 뮤지컬 '드라큘라'는 이번 한국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 한국에서는 공연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현재 7월 10일부터 23일까지 마지막으로 앵콜 공연을 진행한다고 하니 아직까지 보지 못하신 분은 다시는 못 볼 훌륭한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