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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해외 여행

스물 아홉, 직장을 때려치우고 유럽으로 떠나다.

* 본 포스팅은 글의 편의상 경어(높임말)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스물 아홉에 저지른 대담하고 무식한 일!

 

 2011년 4월,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멀리 유럽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대학원까지 다니며 공부하던 전공분야로 취업을 해서, 성실하게 다녔다고 스스로 표현하기는 뭣하지만... 그래도 나름 나쁘지 않은 회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비슷한 업무에 실증도 났었고, 때마침 다가온 슬럼프와 겹치면서 여러모로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슬럼프에 빠지고 힘들다보니 상대적으로 열악한 근무 조건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이런 일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 자체에 대해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어릴 적부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하여 걸어온 길이 모두가 잘못 걸어온 것만 같은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혹자는 한 순간의 오판으로 일을 그르쳤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퇴직이라는 선택을 하기까지 한 두 달이 아닌 수 개월간 고민하고 또 고민했기에 감히 한 순간의 결정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팀장님을 포함한 회사쪽과의 면담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길어지면서 퇴직 요청 이후로 한 달이 넘게 걸린 면담 기간 동안 마음 고생을 했고, 그 과정에서 원치 않게 오해를 받는 일이 발생해서 또 다시 마음 고생을 하게 되었다. 결국은 지칠대로 지쳐갈 때 즈음 되서야 퇴직이 최종 결정되었다.

 

퇴직하던 날, 마지막 남은 비품인 컴퓨터를 반납하기 전에 정들었던 책상에서 한 장 ⓒ 더팬더

 

 2011년 3월 31일. 정확하게 3년 9개월간의 첫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첫 직장이라는 곳에서 신입사원으로서 겪었던 일들. 사회 생활 초년생으로서의 단맛 쓴맛 보면서 다녔던 시절. 그리고 처음으로 직책을 달게 되었던 승진의 기억.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던 팀 동료들과 힘들때마다 힘이 되어주던 입사 동기들 모두를 뒤로하고 회사문을 나선 날. 같은 팀에서 근무하던 입사 동기 형님이 터미널까지 바래다 주면서 함께 근처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었다.

 

 화끈한 매운맛에 땀이 줄줄 흘리면서 속이 살짝 아려오는 것이 시원섭섭한 감정의 표현을 몸이 대신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 되었든 이미 일은 저지르고 말았으니... 아! 후련하다!!

 

 

처음으로 떠나는 외국 여행

 

 퇴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일도 제대로 잡히지 않던 기간 동안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을 저질러 버렸다. 다른 일을 구하게 되면 언제 다시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럽 배낭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일을 그만두게 되면 적어도 연말까지 9개월 가량은 쉬고 나서 완전히 새로운 직장을 찾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스물 아홉이라는 나이로 새로운 직장을 찾는다는 것이, 그것도 경력이 아닌 신입이라면 말처럼 쉬울지는 사실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쉬는 동안 재정 상태에 대한 면밀한 점검이 필요했다. 컴퓨터로 쉬는 동안의 예상 지출 내역을 꼼꼼하게 점검하여, 가장 안 좋은 경우까지 대비하여 필요로 하는 자금을 준비해 두고, 나머지 여유 자금 중에서 여행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더 길게 다녀오면 좋았으련만, 첫 외국 여행이라는 부담감과 외국 여행 경비에 대한 감이 전혀 오지 않는 상태에서 예산을 잡다보니 긴 여행 일정은 감당할 수 없을 듯 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잘 활용해서 여행을 하기로 하고, 일단 가장 먼저 구해야 한다는 항공권을 질러버렸다. 내 생애 처음으로 카드에서 100만원이 넘는 금액을 일시불로 결제해봤다. 그 다음에는 시중에서 여행책을 구입하여 개략의 일정을 짜고, 숙소를 예약했다. 인터넷을 통해서 최대한 저렴한 숙소를 찾아서 예약까지 하고 나니 이제 출발만 남았다.

 

한 달간의 유럽 여행의 짐이 되어줄(?) 친구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분홍색 목베개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 더팬더

 

 여행을 준비하면서 항공권 구매부터 숙소, 일정 모든 것을 여행사 직원의 힘을 일체 빌리지 않고 혼자서 결정하고 실행했다. 여행 준비과정부터 모든 것을 직접 챙겨야했고, 그러다보니 실수도 있었다. (이 실수는 후에 다시 언급할 예정이다.) 실수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고생도 필요했다. 숙소 예약의 경우 기껏 예약했으나 다른 이유로 변경 및 취소를 해야할 일이 있었는데, 일일이 외국인과 메일을 주고 받으며 처리를 해야했다. 아무래도 돈이 걸린 문제다보니 예민할 수 밖에 없는데,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정말 답답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뭐 그래도 그렇게 고생과 실수를 해가면서도 모든 것을 직접 챙긴 덕분에, 우스개소리로 작은 개인 여행사 하나 차려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엉터리 개인 여행사에 의뢰하면서 또 다른 불편(?)을 감수하실 고객님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드디어 출발! 유럽행 비행기에 탑승하다.

 

 퇴직을 하고서 집에서 쉬는 것도 정말 잠시 뿐! 고작 사흘 쉬고서, 바로 나흘 째 되던 날이 바로 유럽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퇴직전까지는 서류 정리하랴, 퇴직 인사하러 다니랴, 거기에다 막판까지 여행 일정 조정 및 숙소 예약하랴 정신이 없더니, 한 달간 사용할 짐을 겨우 여행 이틀 전에야 처음으로 싸보았다. 짐을 싸면서 추가로 필요한 목록 점검하고 재빨리 장을 보고 나니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을 충분히 느낄 새도 없이 여행의 날이 다가오고 만 것이다.

 

인천에서 홍콩까지 데려다 준 캐세이퍼시픽항공의 비행기 ⓒ 더팬더

 

 인천에서 홍콩까지 날아갔다가 다시 런던을 향해 날아가는 장시간에 비행이기에 막상 비행기를 타려고 하니 약간의 긴장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비행기를 처음 타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제주도 놀러 갔다 올 때 탔던 두 번의 비행 경험이 다 였고, 그마저도 비행 내내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만 자고 있어서(어린 시절엔 잠이 많았다. 절대 무서워서 기절한 것은 아니였으므로 오해하지 말아주시길) 비행 기억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약간의 설레임과 긴장감을 안고 드디어 홍콩행 캐세이퍼시픽 항공에 올랐다. 자! 이제 진짜 유럽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여행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