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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전시회/문화재/문화재 답사

창덕궁 이야기 - 추석에 궁궐을 찾아가다.


 2007년 추석은 주말을 합쳐 5일 간의 긴 연휴가 이어졌다. 그 긴 연휴의 첫 날, 참으로 오랜만에 답사를 위해 발걸음을 나섰다.

 어떤 이들은 황금 같은 휴일에 그런 고리타분한 일이나 하고 다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하는 일을 좋아하는 체질인지라 휴일이 늘어날 땐 쉬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나도 모르게 '이번엔 어디 어디를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싸돌아다니던 습관이 몸에 베어버린 모양이다.


처음 찾아 간 창덕궁

 창덕궁은 조선 궁궐 중에서 원형이 가장 잘 남아 있어 그 보존을 위해 안내원와 함께 관람하는 제한 관람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처음 창덕궁을 찾았던 날, 다른 궁궐처럼 혼자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다닐 생각으로 준비를 해 갔지만 안내원의 안내 속도에 맞춰서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관람 인원이 적었던 평일인 덕분에 상세한 설명도 듣고 궁금한 것은 그 자리에서 질문하며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얻어내려고 안달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동행했던 안내원이 질문 많은 관람객 덕분에 피곤하지는 않았을까 모르겠다.


추석에 다시 찾은 창덕궁

 창덕궁을 찾는 것은 그 때가 두 번째였다. 다시 창덕궁을 찾았을 때는 때마침 추석연휴와 겹쳐서인지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첫 번째 관람 때 제대로 찍지 못했던 사진들을 찍어 볼까하는 생각으로 찾아갔는데, 마침 사람들이 많다보니 설명을 제대로 듣기 힘들었다. 이를 핑계삼아 일행들로부터 조금씩 떨어져서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실 안내원의 동선을 따라다니다 보면 원하는 사진을 찍기가 힘들다. 건물 전경을 찍으려고 하면 한 가운데에 안내원과 일행들이 나오고, 사람이 한적해질 즈음에 찍으려고 기다리면 안내원을 빨리 따라가야 하는지라 원하는 사진 찍기가 어렵다.

 그러니 이번 같은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있으랴. 좋지도 못한 성능의 똑딱이 카메라로 여기 저기 찍어대는 내 모습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우스워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창덕궁 애련지와 애련정. 나무에 가을물이 조금씩 들고 있었다.

조선의 이궁? 동궐?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이 조선의 정궁(正宮)은 경복궁이다.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조선의 정궁으로 지어진 것은 경복궁이었지만, 임진왜란 이후로 불타버린 뒤로는 폐허 상태로 방치되다 시피했다.

 반면에 태종 즉위 이후에 이궁(離宮)으로 건설한 창덕궁은 임진왜란 당시에 경복궁과 마찬가지로 불에 타버렸지만 재건되지 못한 채 폐허로 남겨진 경복궁과는 달리 훌륭하게 재건되어 그 이후 조선의 정궁 역할을 대신 하게 된다.

 '이궁'은 궁궐의 화재나 반란 등으로 인해 임금이 잠시 피해 있는 곳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지어진 궁궐이다. 하지만 평상시에도 임금들이 종종 사용한 기록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임금의 '비상대피소'의 역할로만 고정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창덕궁도 본래 그러한 목적으로 지어진 '이궁'이었다.

 창덕궁 바로 옆에는 또 하나의 궁궐이 남아 있는데, 바로 '창경궁'이다. 본래 이름은 수강궁으로 세종 때 상왕인 태종을 위하여 지은 궁궐이었다가 이후 성종 때 더 크게 지으면서 창경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창덕궁과 창경궁 두 궁궐이 담장 하나를 사이로 붙어 있기 때문에 두 궁궐을 합쳐서 '동궐'이라고 부르는데, 원래의 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 지금의 서울역사박물관 바로 옆에 복원되어 있는 '경희궁'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이라고 불렸다.


조선의 역사와 함께한 궁궐

 앞서 말했듯이 임진왜란 이후로 경복궁과 창덕궁 모두 불에 타버렸지만, 정작 정궁이었던 경복궁은 복원하지 않고 폐허로 남겨두고 창덕궁과 창경궁 일대만 재건하였다. 경복궁 재건과 관련하여서는 이후에 경복궁 이야기를 쓸 때 자세하게 다루기로 한다.

 광해군 이후로 창덕궁은 조선의 정궁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고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궁궐이 되었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 황제가 창덕궁 대조전에서 훙거(왕이 돌아가심)하면서 비로소 조선의 궁궐로서의 역할을 마칠 때까지 약 300년을 조선 왕실의 중심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창덕궁은 지금도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원형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원형 보존 상태가 양호한 점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가 뛰어난 점을 인정받아 1997년에는 유네스코(UNESCO)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이제는 우리 민족의 문화재를 넘어서서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재가 된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궁궐의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자율 관람이 일주일에 단 하루인 목요일에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반관람의 5배나 되는 관람료 때문에 찾아가는 일이 망설여지곤 한다. 보존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반인이 쉽게 다가서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나라 문화재의 실태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몰지각한 방문객들이 문화재에 낙서를 해놓는 것은 예사이고,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된 채 관리가 되지 않아 파손이 심하거나 심지어는 현재 소재 파악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보존이라는 명목하에 최소한 문화재가 사라져버리는 일은 없게끔 한다면 차라리 파손되는 경우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그리고 제한 관람이라는 제도를 통해 일반 관람객의 요구도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줄 수 있고, 정말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사람에게는 자율 관람을 허용하기도 하니 '문화재의 보존'이라는 측면과 '문화재의 개방'이라는 측면을 어느 정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제도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여유롭지 못한 소시민의 입장에서는 조금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자율관람 입장료를 낮춰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뭐 어디까지나 내 욕심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