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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책과 영화

로마의 역사가 내 서재 속으로...

로마인 이야기. 1: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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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일본의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 1편을 발표하면서 독자들에게 장대한 약속을 하게 된다. 향후 1년에 한 권씩 총 15권 분량으로 로마의 흥망성쇠사를 쓰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당시 그녀의 나이가 55세, 약속을 정확히 지킨다 하더라도 15년 후면 70세, 그리 적지 않은 나이가 된다. 더군다나 약 1천년에 이르는 로마의 역사를 시작부터 그 끝까지 일일이 파헤치겠다는 약속은 너무나도 엄청난 것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부 독자들은 그녀의 약속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시오노 나나미 (1937~ )
 
 우리 나라에 '로마인 이야기'가 소개된 것은 1995년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두고 있을 즈음이었다. 단짝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노란 표지의 책, 그 것이 첫 대면이었다. 당시 친구와 몇 권의 책을 교환하여 읽곤 하였는데, 유독 이 책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어린 마음에 작가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홀대를 했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로마인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중3 때였다. 사회 선생님의 추천으로 이 책을 다시 접하게 된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당시에는 라디오 광고 등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책이 되어 있었고,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이미 책을 접하고 난 뒤였다. 한번 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책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묘한 일이 일어났다.
 
 불과 3년전에 그렇게도 홀대했던 책 속에 푹 빠져있는 나를 발견한 것은 이미 3권까지 다 읽고 난 후였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다. 역사서가 이렇게 재미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마치 머리 속에서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고, 역사의 이면에 감춰져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 알았다는 지적 흥분에 한시도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바로 구해서 읽어온 것이 어느 덧 10년이 지나서 현재 나와 있는 14권까지 한 권도 빠뜨리지 않고 읽게 되었다. 지금 껏 살아온 인생의 반 조금 못 되는 기간을 '로마인 이야기'와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애착이 가기 때문일까? 자기 눈 스스로 못 찌른다고, 어지간한 책들을 읽으며 그 책의 장단점을 나름대로 분명하게 분석해 왔지만, 이 책의 단점을 꼽으라고 하면 명확하게 꼬집어 내기가 힘들다.
 
 그래도 굳이 책을 보며 아쉬웠던 점을 한가지 꼽으라면, 수 없이 많은 명언으로 후세인에게 알려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서술에 무려 두 권(4권과 5권)이라는 분량을 할애했다는 점이다.
 
 로마사에서 '공화정'과 '제정'의 과도기에 존재했던 개혁가이자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버지였던 그는 뛰어난 웅변가이자 전술가로 수 없이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용맹한 장군이었다. 동시에 '갈리아 전기'와 '로마 내전기' 등을 남겨 문장가로도 이름이 남은, 다시 말해서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역사속의 인물이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이다. 그가 '제정' 이후의 '로마'에 끼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B.C. 100 ~ B.C. 44)
 
 
 그만큼 서술할 내용이 많아서일까, 저자는 그에 관한 서술에 두 권을 할애하며 자세하게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지만, 1천년 로마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역사서의 입장에서 보면, 잠시 역사의 흐름이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긴장감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이러한 단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책이 가지는 장점이 그만큼 크다는 것 만큼은 강조해 주고 싶다.
 
 먼저,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해 풍부한 사료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당시의 저작물인 '원사료'는 물론이며, 로마 시대 이후에 기술된 '2차 사료'까지도 꼼꼼하게 다루어서 정리해내는 그녀의 능력만큼은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에다 사료에 없는 장면들까지도 추리해서 채워넣는 그녀의 재구성 능력 역시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마치 한편의 이야기를 보는 듯이 부드럽게 연결되는 구성,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에는 "~였을 것이다."라는 말을 집어 넣어서 역사적 사실과는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밝혀 놓는다. 대중 역사서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앞으로 나올 마지막 권을 포함하면, 모두 15권, 적은 분량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1천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로마, 그리고 그 시간 속에 살았던 로마인들의 삶과 문화를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을 단 15권으로만 끝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