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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책과 영화

80일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고?

80일간의 세계일주(쥘베른컬렉션4)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쥘 베른 (열림원,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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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쥘 베른의 작품들은 하나 같이 신기한 세계로의 여행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해저2만리'에서는 바다 속 깊은 곳을,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나라 탐험'에서는 포탄에 실려 달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구 속 여행'에서는 분화구를 통해 지구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쥘 베른 (1828-1905)


 하나 같이 신기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호기심이 왕성한 어린 나이에 읽었을 때에도 감명을 주었지만, 다 큰 어른이 되어서 읽어도 재미가 전혀 반감되지 않는다.
 그 것은 그의 소설들이 많은 이들을 공상의 세계로 빠지게 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작품 중에서 그나마 가장 현실성 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80일간의 세계 일주'가 아닐까 싶다. 당시에는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않아서 세계일주를 한번 하는 것도 꿈같은 이야기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만 날아가면 지구 어디든 못가는 곳이 없을 정도이니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이제는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로 내기를 하게 된 '포그'는 80일만에 세계일주를 마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길을 떠난다. 그와 동시에 어떤 범죄 사건의 용의자로 포그를 지목한 '픽스'형사가 그를 잡기 위해 그의 뒤를 따라 밟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도를 거쳐서 동쪽으로 계속 항해한 그는 아쉽게도 81일만에 다시 영국 땅에 도착하게 되고, 내기에서 지고 만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한 그에게 그의 하인 '파스파루트'는 갑자기 나타나서 내기에서 지지 않았다고 외치며, 포그를 재빨리 약속 장소로 데려간다.
 
 간신히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내기에 이기게 된 필리어스 포그.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비밀은 바로 그의 여행 경로에 있었다. 그가 동쪽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동안에 태평양을 통과하면서 바로 '날짜 변경선'을 지나면서 하루를 벌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그저 필리어스 포그가 이겼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날짜 변경선 (세로로 굵은 선)
 
 
 날짜 변경선은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가는 '본초 자오선'의 정 반대편에 있다. 이 지역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넘어가면 하루 전날이 되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가면 하루 다음날이 되는 것이다. 가령 1월 1일 새벽에 서울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곧바로 날아가면서 날짜 변경선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넘어가면, 그 곳은 아직 12월 31일이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1월 1일을 맞게 된다.
 
 신경 쓰지도 못하고 있었던 '날짜 변경선' 덕분에 우리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는 운이 좋게도 내기에서 이기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승리를 단순하게 운 때문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소설에서 그는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며,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인정을 베풀기도 하는 아량까지 갖추고 있는 그의 인성이 그를 결국 내기에서 이기게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만약 세계 일주를 하게 된다면, 필리어스 포그처럼 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그 넓은 세계를 여행할 때, 80일이라는 시간은 정말 말 그대로 세계를 한 바퀴 돈 것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을 아주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여행이란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을 느끼고 체험하는 데에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꼭 한번은 반드시 가보고 마리라'는 다짐을 하며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