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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를 싫어하는 학생들의 이유는 바로 이름도 생소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아무 의미도 없이 줄줄 외우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 이름은 비슷한 것들이 왜 그렇게 많은 지 '~의 난', '~사화', '~환국' 등, 사건 이름만 외우다가 결국엔 '국사'라는 과목에 질려버리고 만다.
학원에서 강사로 근무하던 시절, 사회-국사 과목을 가르치면서 어떻게 하면 재미를 유발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 무수히도 많은 책과 자료를 찾아가며 수업 시간과 관련 있는 재미 있는 이야기를 찾았고, 이른바 '국사 스페셜'이라는 이름으로 10여분간 이야기해주곤 했다.
아이들에게는 단순한 사건 이름과 내용만 대충 이야기하고 넘어가면서 사건이름, 사람이름, 지명이름 등을 외우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사건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처럼 해주는 것이 훨씬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흥미를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직접 읽어보라고 몇 권의 책을 추천하곤 하는데, 내가 직접 다 읽기 전까지는 함부로 책을 추천하는 편이 아니라서, 추천해줄 수 있는 책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또 다시 추천을 해줄 만한, 그것도 강력 추천을 해도 전혀 거리낌없는 책을 찾아냈다
"조선 선비 살해 사건"은 조선의 건국부터 명종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조선은 건국 당시부터 고려에 충성하는 신하들을 죽이지 않고서야 새 나라를 세울 수가 없었다. 건국부터 선비들의 피를 묻힐 수 밖에 없었던 조선은 불안한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수 없이 많은 선비들을 숙청해야 했다.
왕권이 안정되는가 싶더니 나타난 세조의 왕위 찬탈 사건이 일어나고, 이를 반대하고 단종을 복위하려던 선비들이 다시 대거 숙청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선비들의 수난은 끊이지가 않는다.
성종의 시대에 정계에 나타나기 시작한 사림들은 뒤이은 연산군의 시대부터 시작되는 '사화'로 인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고, 심지어 이미 죽은 사람까지도 '부관참시'라는 끔찍한 형벌을 받는 수모를 겪는다.
명종의 초기 집권기까지 이어지던 사화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남아 이후에 정국을 주도하게 되는 사림의 이야기로 책은 마무리 된다.
특히 2권의 경우 본격적으로 사림의 등장과 그로 인해 위기 의식을 느낀 훈구 공신 세력 사이의 힘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 '사화'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폭군'으로 기억되고 있는 연산군이 두 차례나 큰 사화를 일으킨 연유와 그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국사책에서 잠깐 언급되고 마는 '사화'에 대해서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책은 두 권으로 총 800여 페이지의 만만치 않은 분량의 책이다. 그렇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절대 없다는 사실.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루어져서 부담이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서라기 보다는 '역사 여행기'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읽기 쉽게 구성된 문단 구성과 사진 자료들이 책을 읽는 재미를 오히려 증가시켜준다.
이 책을 적극 추천하는 또 한가지의 이유는 역사적 기록을 풍부하게 인용하였다는 점이다.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들을 주로 하고, 야사의 기록들도 가져다가 쓰고 있다. 그만큼 작가의 개인적인 견해보다는 객관적인 서술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성의 경우 사실의 단편적인 나열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 이 책의 경우 오히려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는 사실이 하나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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