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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전시회/문화재/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기자

평양에서 온 국보들 - 북녘의 문화유산

평양에서 온 국보들 - 북녘의 문화유산

 관람일 : 2006년 8월 13일

8월 13일, 무더위도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날.
주말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작년에 용산으로 이전한 뒤로는 첫 방문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6월 13일부터 8월 16일까지
"평양에서 온 국보들 : 북녘의 문화유산" 전시회를 가졌다.
북한의 국보 50점과 준국보 11점을 포함한 총 90점의 북한 문화재가 전시되었다.

  


기획전시실 앞에 커다랗게 포스터가 걸려있다.



 기획전시실 내부.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되는 곳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시물은 사진촬영을 해서는 안되지만,
중앙박물관에서는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하에 촬영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유물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마음에 내부 촬영은 하지 않았다.


유물 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www.museum.go.kr)


전시실에 들어서자 마자 가장 인상이 깊었던 유물은 바로 "뼈피리"이다.

새의 다리뼈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피리라고 하는데, 현재 남북한을 통틀어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악기라고 한다. 북한의 준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새의 다리뼈 속이 비어 있어서 마치 관처럼 생겨있고, 여기에 13개의 구멍을 뚫어

피리로 사용하였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로 추정하고 있다.



'전'이라는 한자가 새겨진 금속활자. 개성에서 발굴되었으며, 활자의 생김새,

출토지점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의 활자로 추정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복'자가 새겨진 금속활자와 거의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며,

고려시대 금속활자 기술의 선진성과 우수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북한의 준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1992년 고려 태조 왕건릉의 보수 공사중 발견된 청동상. 초기에는 불상으로 알려졌으나,

동상의 형태와 문헌상의 기록을 통한 연구 결과 '태조 왕건'의 동상임이 발혀졌다.

전체적으로 앉아 있는 나신상으로 전시 중에는 중요 부분을 천으로 가려서 전시하고 있다.

발굴 당시에 금도금을 한 청동 조각과 비단 천들이 붙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원래는 도금이 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단원 김홍도의 '선녀도'. 북한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산에서 영지를 캐서 바구니에 담고 내려오는 영지 선녀의 모습을 묘사했다고 한다.

교과서에서 보아왔던 김홍도의 풍속화의 느낌과 조금 다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김홍도만의 활달하고 거침없는 필치와 절제된 묵법 및 담채가 잘 어울리는 귀중한 작품이라고 한다.

 



휴식을 취하며 바라본 기획전시실의 모습

방학이라 그런지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많이 찾아 왔다.




상설 전시실에 가서 1층에 있는 고고관을 모두 들러보고 나오면 경천사 십층석탑이 반기고 있다.

이 탑은 고려 충목왕 때 대리석을 재료로 세운 석탑이라고 한다.

1907년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던 것을 1918년 반환하여 1960년 경복궁에 복원했으나

보존상의 문제로 1995년 해체되었다가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이전 개관에 맞추어

복원해놓은 것이라고 한다.



상설전시실의 역사관에서는 얼마전 방송을 통해 국민적 모금으로

일본으로부터 환수한 '김시민'장군의 '선무공신교서'가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1차 진주성 전투에서 거의 10배에 가까운 왜군으로부터 진주성을 지켜내는

대 승리를 거둔 '김시민' 장군에 대해 내린 공신 교서이다.

공신교서가 작성될 당시에는 이미 2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장군을 비롯한 진주성 백성이

모두 몰살되었기 때문에, 이 교서에는 '선조'임금의 애달픈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유물 하나 하나를 너무 유심히 본 탓인지, 어느 덧 역사관도 반밖에 돌아보지 못하고,

아직 전체 3층 규모 전시실의 3분의 1도 채 보지 못했는데, 폐관시간이 다가오고 말았다.

경복궁 옆에 있을 당시와 비교하면, 규모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커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는 보존실에 들어 있던 유물들이 일반인들 앞에 많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음 번 다른 기획전시가 있을 때에는 상설 전시를 이어서 보리라 마음 먹으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