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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책과 영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그 시절, 우리들만의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먼 옛날 한 바보 왕자가 제단 앞에 엎드려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물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J.M.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中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 반영된 성장 소설입니다만 나이가 먹고 철이 든 지금에 읽는 것이 감흥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읽었을 땐 이해할 수 없었던 미묘한 감정들 때문인지 읽으면서 가슴이 한 켠이 아릿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인 '제제'는 '가난'이라는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려 애를 쓰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어린 아이일 뿐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가난'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런 환경을 제공한 아버지를 향해 아무 거리낌 없이 욕을 하며 원망을 하기도 합니다. '착하고 바른 어린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제제는 참 버릇 없는 아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어린 아이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 놓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감정의 표현이 절제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그러한 아이들의 습성을 제제를 통해서 아무런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문득 장난이 치고 싶어지면 망설임없이 실행에 옮기고, 노래가 너무 좋으면 가사의 내용은 생각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자기가 맞고 있을 땐 상대방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마구 욕을 퍼붓습니다.

 아이들의 심리 상태등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지가 없었던 어린 시절, 책에는'착하고 바른 것'만 쓰여 있는 줄만 알았기에 제제의 잘못된 행동들은 물론이고, 제제를 무조건 감싸주기만 하는 글로리아나 뽀르뚜가 아저씨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가난하다는 사실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한 불만을 서슴없이 표출하는 제제가 무능력한 아버지에게 반항심을 갖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가난'에 대한 슬픔과 고통이 더 크게 표현될 수 있었다는 것은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에서야 다시 읽는 책의 느낌은 어렸을 적 읽었던 그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네요.

 불현듯 읽다가 어린 시절 일이 떠올라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그리 풍족하지는 않았던 어린 시절, 식구들을 책임지기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일을 다니며 한 달에 한 번 내지는 두 번 정도 잠깐씩 얼굴을 비추며 집에 들렸던 아버지.
 3~4일에 한 번 전화 목소리로 안부를 전하던 그 어린 시절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을 묻자 나는 서슴 없이 '장난감 기차'를 받고 싶다고 말했고, 한 달을 기다렸지만 결국엔 받을 수 없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잔뜩 기대하고 있던 일이 무산되자 어찌나 어찌나 억울하던지 큰 소리로 울면서 마구 떼스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내 나이 너댓 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으니 아버지의 나이가 스물일곱에서 여덟 살 쯤,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한 시기에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러 먼 외지에서 막일을 하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아려옵니다.

 어린 시절, 그 아련한 기억을 되짚어 보면서 책장을 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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