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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전시회/문화재/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기자

한글 옛소설 : 우리글에 우리 이야기를 담다

2009. 10. 2.
우리글에 우리 이야기를 담다.
국립중앙박물관 테마 전시회 : 한글 옛소설



 10월 9일, 오늘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을 기념하여 제정된 '한글날'이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지구 상의 문자를 평가한 결과에서 1위를 차지했었다는 내용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며, 훈민정음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채택되었다는 점, 유네스코에서 문맹 퇴치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의 이름이 '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유네스코 세종대왕상)'으로 명명된 것으로만 봐도,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공인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특히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의 '부톤'섬의 '찌아찌아'족의 언어를 기록할 문자로 '한글'이 채택되었다는 사실이 전해져서 한국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기도 했다.

재밌는 정보 : 한글날은 왜 10월 9일일까?

 10월 9일이 한글날이라고 하면, 왜 하필이면 '10월 9일로 정했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한글날이 처음 제정될 때에는 지금처럼 10월 9일이 아니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처음 만들었다는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세종25년(1443년) 12월에 날짜가 명기되지 않은 채로 "이번 달에 왕이 언문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3년 뒤인 세종 28년(1446년) 9월에는 역시 날짜가 명기되지 않은 채로 "이번 달에 훈민정음이 완성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를 토대로 국어학자들은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만들어 반포한 1446년 음력 9월에 의미를 두고, 9월 그믐날(29일)로 가정하여 양력으로 환산하여 1926년 11월 4일 처음으로 한글날 기념식을 가졌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제정된 한글날의 이름은 지금처럼 '한글날'이 아니라 '가갸날'로 정해졌었고, 또한 지금처럼 양력이 아닌 음력 9월 29일로 정하다 보니 마치 명절처럼 매년 양력 날짜가 달라졌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1934년에 1446년 음력 9월 29일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8일을 '한글날'로 정해서 기념해왔다.

 그러다가 1940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이 되면서 한글날은 다시 한 번 수정되게 된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가 쓴 서문에 '세종 28년 9월 상순'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이로 인해서 9월 상순 마지막 날(10일)로 다시 양력을 환산하였고, 이로 인해 1945년부터는 19일 앞당겨서 10월 9일을 '한글날'로 지정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10월 9일로 제정된 한글날은 공휴일로 제정되었다가 1991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올해처럼 휴일의 대부분이 주말과 겹치는 때에는 공휴일이었던 한글날이 아쉬워지기도 한다.


 563돌 한글날을 맞이해서 소개할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진행 중인 테마 전시회 '한글 옛소설 : 우리글에 우리 이야기를 담다'이다. 11월 1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서는 한글로 적힌 우리의 옛날 소설들을 만나 볼 수 있다.



 '한글'이 발명되기 전에도 우리에게는 지금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우리의 '말'이 있었다. 다만, 우리의 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가 없었기에, 중국의 글자인 한문을 이용하거나 이를 응용한 '향찰(또는 이두)'로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소설로 알려진 '김시습'의 '금오신화'도 역시 한글이 없었기에 한문으로 적을 수 밖에 없었고, 이후에도 우리의 옛 이야기들은 '한문'을 빌려서 전해져 내려오거나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지는 수 밖에 없었다.

 세종대왕에 의해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는 '금오신화', '설공찬전'등의 우리의 옛 한문소설과 '삼국지' 등의 중국 소설 등이 한글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612년 허균에 의해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이 지어지면서 본격적으로 한글 소설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재밌는 정보 : 최초의 한글 소설은 홍길동전? 설공찬전?

 교과서에도 실려 있듯이 우리 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은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이다. 그런데 1997년 서경대 이복규 교수가 '묵재일기' 속에서 종이 사이사이에 숨겨져있던 한글로 된 소설을 발견했다. 바로 '설공찬전'이었는데,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채수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어, 허균보다 약 100년이나 앞선 시기의 소설로 판명되었다.

 이로 인해 최초의 한글 소설이 '홍길동전'이냐, '설공찬전'이냐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현재에는 '설공찬전'은 처음 지어질 당시 '한문'으로 지어진 '한문소설'이며, 당시 금서로 지정되어 사라지면서 그 내용을 지키기 위해 '한글'로 필사하여 숨겨둔 것이 발견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최초로 한글로 지어진 소설은 '홍길동전'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


 18세기 이후에는 '세책(貰冊)'이라 하여 금전적 대가를 받고 소설을 빌려주는 일이 성행하였으며, 19세기에는 '방각본' 한글 소설이 등장하면서 한글 소설 확산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 때 주된 독자들은 '언문'이라며 천대받던 글자인 '한글'을 배운 부녀자들이었다.

'윤덕희'의 '독서하는 여인'. 윤덕희는 초상화로 유명한 '윤두서'의 아들이다.



 전시된 우리의 옛 소설을 일부 살펴보자.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숙영낭자전'이다. 천상의 선관이었던 '백선군'과 선녀였던 '숙영'이 벌을 받고 지상으로 쫓겨났다가 우여곡절 끝에 만나 사랑을 이룬다는 일종의 연애 소설이다. 천상 세계를 다루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에 유행하던 '도선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연애 소설인데, 예나 지금이나 '연애'라는 주제는 이야깃거리로써 끊임 없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숙영낭자전은 주인공의 이름을 '숙영'으로 표기한 계열과 '수경'으로 표기한 두 가지 계열로 전해져 오고 있다.

숙영낭자전 필사본



 조선 후기에 출현한 것으로 보이는 작자 미상의 '두껍전'은 동물을 의인화하여 당시의 사회상을 풍자한 소설이다. 1890년대 필사본으로 남아 있는 책을 자세히 보면 재밌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당시에는 '세책'이라 하여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여 책을 빌려서 보는 것이 유행하였는데, 지금으로 치면 책 대여점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 대여점에서 빌리는 책들을 보면 여러 사람의 손을 타면서 책 상태가 많이 손상된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 당시 '세책점'에서도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손으로 잡고 책장을 넘기는 부분이 글씨가 닳고 닳아서 나중에는 알아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던 모양인지, 책 오른쪽 아래 귀퉁이를 보면, 일부러 글자 하나 정도의 빈 공간을 남겨 둔 것을 볼 수가 있다. 당시에 이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을 '세책점' 주인 모습을 생각해보면, 마치 동네 만화가게 아저씨 같은 모습이 떠올라서 재미있기도 하다.
 

두껍전(1890년 필사본). 책 오른쪽 아래를 보면 글자 하나 크기만큼 일부러 남겨둔 공간이 보인다.

 

김만중이 지은 구운몽의 한글판 필사본


김만중이 지은 '사씨남정기'의 한글판 필사본


최초의 한글소설인 허균의 홍길동전(20세기초 판각본)



 조선 후기에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이가 1인 연극을 하듯이 주변인들에게 소설을 읽어주는 일도 성행했었다. 단원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보물526호)'에 있는 '담배썰기'라는 그림을 보면, 담배가게에서 부채를 든 사람이 책을 펼치며 글을 읽고 있는데, 입을 크게 벌리고 읽고 있는 것이 마치 구연동화라도 하는 것 마냥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아예 이야기꾼의 얼굴을 보면서 일을 하고 있고, 담배를 썰고 있는 사람 얼굴도 웃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어주는 모양이다.

단원풍속도첩(보물 526호) 中 '담배썰기'



 이와 관련되서 조선왕조실록에도 관련 기록이 남겨져 있는데, 정조 14년에는 담배가게에서 패설(소설)을 듣던 이가 영웅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다가 영웅이 결국엔 뜻을 굽히는 대목에 이르자 흥분하여 담배를 썰던 칼로 이야기꾼을 해친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얼마나 사실감있게 이야기를 읽어주었으면 이야기에 몰입해서 사실과 허구를 구별 못해 벌어진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 조선시대에 직업적인 이야기꾼이 있었다?

 조선시대 동대문 밖에 살던 '전기수'라는 이야기꾼은 어찌나 책을 재미읽게 읽어주는지 일주일 동안 장소를 옮겨 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책을 읽는데, 사람들이 둘러싸여서 이야기를 들으면 중요한 대목에서 갑자기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서로 돈을 던지며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곤 했는데,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것을 '요전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예부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해학과 풍자가 가득했던 우리의 조상들이었는데, 만일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떠했을까? 아직도 불편하게 중국의 '한문'을 빌려다가 우리의 발음을 적어가면서 글을 적느라 소설이 활성화되기도 힘들었을 수도 있고, 재미나고 신기한 우리의 옛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부터 명맥이 끊어져버렸을지도 모를일이다.

 세종대왕에 의해서 '한글'이 만들어진지도 벌써 563년이 지났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외계어와 줄임말, 그리고 출처도 알기 힘든 외래어들이 난무하면서 '한글'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글날'을 맞아서 다시 한 번 우리 글자인 한글의 소중함을 깨닫고, 세계 속에서 우수함을 인정 받는 우리의 글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했으면 한다. 아울러 주말을 이용해서 박물관에 들려서 우리의 옛 소설 이야기를 찾아 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