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들어서 가장 춥다고 하는 주말입니다.
간만에 박물관을 찾아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이리 추울 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안 온지 좀 되어서 요새 진행 중인 전시가 궁금해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왔습니다.
이촌역에서 박물관으로 늘 걷던 길은 현재 지하보도 공사중이라 막아 놓았더군요.
큰 길가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자니 바람이 참 매서웠습니다. 잠시 시간을 보려고 폰을 꺼냈는데 손가락 끝이 얼얼하더군요.
추운 날씨 덕분에 관람객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왔는데, 막상 전시실에 들어서니 엄청난 인파가 관람을 와 있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 위주였는데요. 대부분 부모님이나 단체 인솔 교사들과 함께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추운 날씨에 관람하러 오는 정성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일부는 방학 숙제 때문에 억지로 오기도 했을 것이고, 부모님의 열성 덕분에 마지못해 온 경우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어린 나이부터 박물관을 자주 찾아오는 것 자체가 반길만한 일인 것은 분명한 듯 하네요.
자꾸 접하면 접할 수록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대상에 관심이 가게 되는 것처럼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늘어나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2011년 신묘년 기념 테마전시 : 재치의 묘, 토끼
상설 전시실에 들어서니 역사의 길에서 조그마한 테마전이 진행 중이더군요.
2011년 토끼의 해를 맞이해서 유물 속에서 찾아보는 토끼와 관련된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국보 95호, 청자 투각 칠보문 향로
국보 95호, '청자 투각 칠보문 향로'는 향로를 받치고 있는 연꽃 대좌를 세 마리의 토끼가 받치고 있답니다.
평상시에 눈 여겨보지 않았던 부분이었는데, 이렇게 조그맣고 앙증맞은 토끼가 향로를 받치고 있다는 사실이 재밌습니다.
향로라는 것이 본래 불교와 관련이 깊은 유물인데, 토끼라는 동물이 불교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지 사뭇 궁금해지네요. 기회가 되면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고려시대 동경 : 오른쪽 아래에 토끼가 절구를 찧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작년에 테마 전시로 진행되었던 고려 시대 동경 두 점도 이번 테마 전시에 다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이번에 보여지는 동경 속에는 토끼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요.
우리가 흔히들 달 속에 있는 토끼가 절구를 찧고 있다고 표현하는 전설 속의 모습이 동경에 새겨져 있습니다.
황비창천이 새겨진 고려 동경 : 동경 윗부분에 왼쪽에는 삼족오가 그려진 해가, 오른쪽에는 토끼가 그려진 달이 새겨져 있습니다.
황비창천이 새겨진 동경 중, 토끼가 그려진 달 부분의 X-ray 사진.
보름달이 떳을 때 보이는 무늬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해석을 하는데요.
우리 나라에서는 절구에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모습으로, 중국에서는 두꺼비의 모습으로 또는 토끼와 두꺼비가 나란히 방아를 찧는 모습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방아찧는 토끼는 도교의 신인 '서왕모'를 위해서 불사의 약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랍니다.
그런데 한 번은 아름다운 선녀인 '항아'가 이 불사약을 욕심 때문에 먹어버리게 되는데, 이로 인해 노한 '천제'가 항아를 두꺼비로 만들어서 달에 가두어 버렸다고 하네요. (항아 이야기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니, 다른 이야기도 한 번 찾아보면 재미있겠네요.)
결국 토끼든 두꺼비든 모두 불사의 약과 관련 있는 동물들인데, 이 둘을 달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보면 옛 사람들이 달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했던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토끼를 주제로한 이번 테마 전시는 2월 27일까지 상설전시관 1층 역사의 길 입구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선사 고대관 테마전 : 강서대묘 사신도
상설전시실 1층에 위치한 선사-고대관의 고구려실에서는 강서대묘 사신도의 모사도가 전시 중에 있습니다.
강서대묘는 현재 북한에 있는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에 있는 고분 중에서 가장 큰 무덤입니다.
고구려 시대의 고분인 '강서대묘'는 그 벽화 때문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현무도는 교과서나 각종 역사책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할만큼 유명한 그림이지요.
강서대묘의 사신도 벽화는 1912년부터 본격적으로 내부 조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조사를 시작하면서 1912년과 1930년 무렵 두 차례에 걸쳐서 모사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모사도는 일제 강점기 당시에 중앙박물관에서 공식적으로 모사했던 작품으로 추정되며, 그 완성도가 여타의 모사도보다 상당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강서대묘 사신도 중 '현무도'
강서대묘의 사신도 중에서 북벽에 그려진 '현무도'는 화면 구성을 긴장감있게 배치하여 마치 뱀과 거북이 실제로 싸우고 있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졌습니다.
'현무도'는 발굴 조사 당시에도 이러한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그 회화적 완성도로 인해서 주목을 받았었다고 하네요.
강서대묘 사신도가 전시된 공간은 그 동안에도 진파리 무덤 벽화나 강서중묘 등의 모사도 등이 전시되었던 곳으로 마치 고분에 들어가서 보는 것과 유사한 느낌이 들도록 벽화를 배치해 두어 전시에 대한 몰입 효과를 높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 강서대묘 사신도의 모사도는 3월 27일까지 전시될 예정입니다.
추운 겨울엔 최적의 문화 공간
밖의 날씨는 많이 춥지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박물관 내의 까페에서 밖을 보고 있자면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모습이 추운 날씨를 잊게 해주네요.
유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항상 항온과 항습을 유지하는 박물관 내부의 환경 덕분에 바깥 날씨와는 전혀 상관 없이 지낼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습니다.
이제 점심도 어느 정도 해결했겠다 싶네요. 다시 전시실로 돌아가서 미처 보지 못한 전시를 보고 밖으로 향해야겠습니다. 이렇게 따뜻한 곳에서 계속 있다가 다시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니 조금 끔찍하기도 하네요. ^^
주말 날씨가 많이 춥다고 하니 옷 단단히 입고 돌아다녀야겠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명예기자 이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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