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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전시회/문화재/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기자

[박물관에서 공부하자] '분청사기'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문화 유적지와 박물관만큼 역사와 문화를 배우기에 좋은 곳들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특히나 문화재에 대한 공부를 할 때라면 박물관은 최고로 좋은 장소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책을 통해 문화재의 설명을 아무리 듣는다 해도, 직접 가서 눈으로 유물을 직접 보는 것에 비할 바는 못되니 말입니다.


 박물관에서 공부하자는 취지로 몇 가지 주제를 잡아서 앞으로 몇 차례 글을 이어서 써볼까 합니다. 일단 첫 포스팅의 주제는 아름다운 우리의 도자기, 그 중에서도 '분청사기'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분청사기'란 무엇인가?


 한국의 도자기라고 하면 가장 익숙한 것이 '고려청자', '조선백자'라는 단어이지요. 이와 더불어서 '분청사기'라는 단어도 교과서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청자라고 하면 푸른 색의 도자기를 말하고 백자라고 하면 하얀 색의 도자기를 말하는 것인데, '분청사기'라고 말하면 어떤 도자기인지 얼른 감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청자나 백자처럼 유행했던 시기가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이름에 잘 나타나지 않아서 헷갈릴 때도 많이 있지요.


 '분청사기(粉靑沙器)'라는 한자말을 그대로 놓고 풀이하자면, '가루를 사용한 푸른색 도자기' 정도로 읽을 수 있겠는데요. 도자기 표면에 백토를 발라서 장식에 사용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랍니다. 정식 명칭인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줄임말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죠. 일제시대 당시에 부르던 명칭은 일본식 이름인 '미시마'였다고 합니다. 이를 당시에 미술 사학자였던 '고유섭' 선생님이 일본식 용어를 버리고 새로 붙인 명칭이라고 합니다.


 분청사기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임진왜란 전까지 유행했던 도자기입니다. 고려시대의 상감청자가 조선 시대로 들어오면서 퇴락하자, 상감기법 등의 장식 기술이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청자나 백자에서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하고 독특한 양식의 도자기가 탄생되었던 것이죠.



분청사기의 장식 기법


 분청사기는 백토를 도자기 표면에 발라서 장식을 하게 되는데, 무늬를 만드는 방법에 따라 총 7가지 기법으로 나뉘게 됩니다.


 '귀얄'이라는 기법은 같은 이름인 귀얄이라는 넓적한 솔을 이용해서 도자기에 백색토를 발라서 장식하는 기법을 말하고, '조화'기법은 백색토를 바른 뒤에 선 모양으로 무늬를 새기며, '상감'기법은 무늬를 먼저 파낸 뒤에 백토 등을 채워서 완성하는 기법입니다.


 '분장'은 '덤벙기법'이라고도 하는데, 백색토를 물에 풀은 뒤 도자기를 담갔다가 빼어 표면에 백토를 입히는 기법을 말합니다. '철화'기법은 백색토를 표면에 바른 뒤에 철사 안료를 사용해서 검붉은 색의 무늬를 그려 넣는 방법입니다. '박지'기법은 표면에 백색토를 바르고, 무늬를 남겨 놓고 나머지 부분의 백색토를 긁어내어 완성시키는 기법이며, '인화'는 도자기 표면에 무늬를 먼저 찍어낸 뒤에 백토물을 발랐다가 닦아내어 무늬가 찍힌 부분에만 백토가 남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분청사기에 사용된 기법들은 유물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다시 한 번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분청사기에 사용된 7가지 장식 기법들.




분청사기에 새겨진 글자들


 분청사기의 바닥에는 글자들이 적혀 있곤 하는데요. 대부분이 도자기가 사용될 관청 이름과 제작자 이름, 제작연도, 그리고 그릇의 등급 표시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분청사기도 고려시대 청자나, 이후 유행하게 될 백자처럼 지방의 가마터에서 제작되어 궁궐이나 관청으로 납품이 되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그릇들이 도난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이걸 막기 위해서 조선 태종 17년부터 그릇을 제작할 때 납품할 관청의 이름을 그릇 바닥에 적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그릇을 훔쳐서 몰래 쓰고 있다가 그릇 바닥에 쓰여진 글자를 누군가가 발견하고 고발하면 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조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작자의 이름을 새기도록 한 것은 세종 3년 이후부터라고 하는데요. 이는 관청에 납품하는 물품인만큼 제작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지고 만들라는 의미에서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최고 발명가였던 장영실도 임금의 가마를 잘못 만들어서 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행여나 자기가 만든 그릇이 제대로 쓰이지도 못하고 깨어져버릴까 조마조마하면서 정성을 다해 그릇을 만들었을 장인들의 모습이 상상이 가기도 합니다.


분청사기 바닥에 새겨진 납품할 관청의 이름들.



분청사기 가마터


 분청사기는 조선 전기 동안 지방의 가마터에서 생산되어 중앙 관청으로 납품되었습니다. 이때 가마터가 위치한 지역별 특색이 그릇에 반영되었는데요. 지역별로 선호하고 유행한 기법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인화 분청사기가 유행하였고, 전라도 지역에서는 박지, 조화 기법이 유행하였으며, 충청도 지역에서는 철화 기법을 사용한 분청사기가 유행하였습니다.


 이처럼 지역별로 특색을 더한 분청사기는 경기도 광주의 중앙관요를 통해서 보급되기 시작한 백자가 관청에 납품되기 시작하면서 퇴색하기 시작하면서 민간용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나마도 백자의 생산이 지방으로 확대되면서 임진왜란 이후에는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답니다.


분청사기의 대표적인 가마터




자라보고 놀란 가슴 분청사기 보고 놀란다?


 국립중앙박물관 3층의 공예관에 위치한 분청사기 전시실에 들어서면 재미있는 유물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둥그렇고 납작한 모양의 커다란 바둑돌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쪽에 달린 짧은 주둥이의 모양을 보면 거북이나 자라의 모양처럼 보이기도 하는 재미있는 형태의 도자기가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국보 260호로 지정된 '모란무늬 자라병'의 모습인데요. 박지 및 철채 기법을 사용하여 강렬하게 장식된 무늬가 얼핏보면 자라의 등껍질 무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독특한 모양으로 도대체 어디에 사용되었나하고 설명을 읽어보았더니 여행용 물병이나 술병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아마도 걸어다니는 나그네에게는 별로 쓸모있었을 것처럼 보이진 않고, 가마나 수레로 이동할 때 안에 넣어두고 흔들거려도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모양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국보260호 모란무늬 자라병



옆에서 보면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는 자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모란무늬 자라병의 상단에 새겨진 강렬한 무늬는 전체적으로 '박지'기법을 사용하였는데요. 백토를 바른 뒤에 무늬만 남기고 나머지를 긁어낸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벗겨냇 곳에는 철사 안료를 사용한 '철채'기법을 사용하여 흑/백의 대비가 강렬한 무늬를 완성시켜주고 있습니다.


박지기법과 철채기법을 사용한 자라병의 모란무늬




다양한 형태, 다양한 문양의 분청사기


 분청사기는 백자처럼 실생활에 사용되는 형태로 대부분이 제작되었기 때문에 그 모양도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제작되었습니다.

 그럼 어떤 형태의 분청사기들이 있는지 유물 사진과 함께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요새도 가장 흔희 쓰이는 형태의 그릇이죠. 바로 '대접'인데요. 사진 속의 대접은 상감기법을 사용한 모란 무늬가 새겨진 대접입니다. 이런 디자인을 응용해서 전통요리를 담는 고급스러운 식기 제작에 활용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란무늬 대접 (분청사기 상감 모란문 대접)



 다음 유물은 박물관에 전시된 분청사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형태인 '편병'입니다. 편병은 양쪽으로 납작하게 제작된 병을 말합니다. 사진 속의 유물 역시 앞서 본 대접처럼 모란무늬가 상감기법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고려시대 상감기법은 주로 선 형태의 상감이 사용되었는데,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법이 발전하여 분청사기에 적용될 당시에는 면 형태의 상감기법도 자주 사용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모란무늬 편병 (분청사기 상감 모란문 편병)



 아래의 두개의 사진들 속의 유물 역시 편병인데요. 전체적인 색상이 밝게 느껴집니다. 도자기 전체적으로 백토를 발랐다가 무늬만 파내는 기법인 '조화'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꽃무늬 편병의 경우 앞 부분에 간결한 선으로 새겨진 꽃무늬가 마치 수줍은 여성의 모습을 연상케 하네요. 개인적으로 이런 색감과 형태의 분청사기를 좋아해서, 이런 모양의 술병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무늬 편병 (분청사기 조화 초화문 편병)



모란넝쿨무늬 편병 (분청사기 조화 모란당초문 편병)



 다음 유물은 뚜껑도 달린 형태의 밥공기처럼 보입니다. 이런 형태의 도자기를 '합'이라고 하는데요. 합은 분청사기 뿐만 아니라 백자나 금속제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유물에 새겨진 강렬한 검은 무늬는 백토를 바른 뒤에 철사 안료로 무늬를 그려 넣는 '철화'기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연꽃넝쿨무늬 합 (분청사기 철화 연당초문 합)



 아래 사진 속의 편병은 물고기 두 마리가 나란히 위를 향하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지는데요. 국보 178호로 지정된 '물고기무늬 편병'이라고 합니다. '조화'기법을 사용하여 무늬를 새겼는데요. 물고기의 지느러미 부분을 빗금 형태로 표현한 것은 요새에도 그림을 펜으로 그리고 대략적인 색을 표시할 때 빗금으로 칠하는 것과 유사한 것 같네요. 장난스럽게 보이면서도 깔끔한 느낌이 드는 무늬들이 유물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국보178호 물고기무늬 편병 (분청사기 조화 어문 편병)



 다음 유물은 일반적인 형태의 '병'입니다. 앞선 유물과 마찬가지로 물고기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사용한 기법에 있어서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백토를 바른 뒤에 무늬만 남기고 나머지를 긁어내는 '박지'기법을 사용하였는데요. 무늬를 남긴게 아니라 오히려 무늬 부분을 긁어내는 방법을 사용한 점이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고기 연꽃무늬 병 (분청사기 박지 연어문 병)



박지기법을 사용해서 오히려 무늬를 파낸 모습이 보입니다.



 아래 사진 속의 유물은 조금 독특하게 생겼습니다. 서양에서 와인을 숙성시킬 때 사용하는 오크통의 모양을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위에는 주둥이가 달린 독특한 형태입니다. 이런 형태의 도구를 '장군'이라고 부릅니다. 장군은 물이나 간장 등의 액체를 이동하는데 사용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남도 지방에서는 장군을 악기로 이용하여 민요 장단을 맞출 때 사용하기도 하지요.


물고기무늬 장군 (분청사기 박지조화 어문 편부)






분청사기에 무늬를 새기는 방법


 글 서두에 분청사기의 장식기법 7가지를 소개하였는데요. 백토를 바르는 방법인 '귀얄'기법이나, '분장(덤벙기법)'을 제외하면 실제적으로 무늬를 남기는 방법은 다섯가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앞선 유물 설명들에서도 한 번씩은 다루었기 때문에 대충 짐작을 하셨겠지만, 글을 마무리 지으며 각각의 기법들을 사용한 대표적인 유물을 한 번씩 살펴보면서 분청사기에 대한 글을 마무리 지어볼까 합니다.


 먼저 철화 기법을 사용한 '연꽃 물고기무늬 병'입니다. 짙은 초콜릿 색의 철사 안료를 물감처럼 활용하여 두꺼운 선으로 그려낸 무늬가 생동감있게 느껴집니다. 철화 기법은 백자에서도 많이 사용되게 됩니다. 하얀 백자에 검붉은 색으로 그려진 것은 대부분이 철사 안료를 사용한 철화 기법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연꽃 물고기무늬 병 (분청사기 철화 연어문 병)



 다음은 조화 기법을 사용한 유물입니다. 조화 기법은 백색토를 그릇 표면에 두껍게 바른 뒤에 주로 선으로 된 무늬를 새겨서 백색토를 파내어 나타내는 기법입니다. 학교에서 미술 시간에 사용했던 조각칼을 이용해서 나무판화를 만들 듯이 파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모란넝쿨무늬 항아리 (분청사기 조화 모란당초문 호)



 이번엔 박지 기법입니다. 역시 백색토를 바른 뒤에 무늬가 되는 부분을 남기고 나머지 부분의 백색토는 긁어내는 방법입니다. 조화 기법과 비교해 보시면 차이를 바로 아실 수 있을겁니다. 


모란넝쿨무늬 항아리 (분청사기 박지 모란당초문 호)



 다음 유물은 얼핏보면 고려 청자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주요 무늬를 나타내기 위해 바로 상감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상감 기법은 무늬를 파낸 후에 백색토나 자색토 등을 채워서 완성시키는 방법입니다. 앞선 시대의 청자에서 주로 사용한 기법입니다. 아래 유물에서는 분청사기에서 유행하던 또 다른 기법인 인화 기법도 함께 사용되었네요.


보물347호 물고기무늬 매병 (분청사기 상감 어문 매병)



 위의 유물에서 상감 기법과 인화 기법이 섞여 있어서 혼동을 겪으실까봐 인화무늬만 있는 유물을 추가로 소개해 봅니다. 인화 기법은 유물에 먼저 반복되는 무늬를 찍어내고, 백색토를 발랐다가 닦아내어 찍어낸 부분에만 백색토가 스며들어 무늬를 완성시켜 줍니다. 


인화무늬 매병 (분청사기 인화문 매병)



 이상으로 분청사기란 무엇인지, 제작된 기법과 만들어진 형태, 사용된 무늬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글을 쓰는 저도 분청사기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기 전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고려 청자와 순백의 미를 자랑하는 조선 백자 사이에 끼어서 이도저도 아닌 과도기에 만들어진 도자기의 한 형태로만 취급했었는데, 유물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서 배우다보니 분명 분청사기가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들이 그렇게 탐을 냈다던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의 한 부분을 분청사기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블로그기자 이귀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