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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Diary

[예스24블로그축제] 나에게 로마의 꿈을 키워 준 책 '로마인 이야기'

 

 벌써 15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국내에 출간된 것이 1995년이라고 하니, 내 나이 서른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인생의 반 가까이를 '로마인 이야기'를 알고 지내온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자니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그래도 내 삶에 있어서 적잖이 영향을 주었던 책 이야기이기에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는 텔레비젼 보다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을 더 좋아했었다. 그 시절 라디오를 들으면 방송 중간마다 광고가 나오곤 했는데, 당시에는 새로 출간된 책의 광고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몇 개의 광고들이 있다. 무서운 배경 음악과 거칠고 쫓기는 목소리로 광고하던 로빈 쿡의 의학 소설 시리즈는 라디오 음성으로만 들어도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반면에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광고하던 '로마인 이야기' 광고도 하도 자주 들어서 그 때 당시에는 카피까지 외웠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그마저도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라디오 광고로 들었던 책 광고들은 적어도 내게 엄청나게 효과가 있었다.

 

 지금은 서점이나 도서관처럼 많은 책이 쌓여 있는 곳을 가면, 막상 내 것이 아니고 당장 다 읽을 수 없더라도 엄청난 부자가 된 것 같다. 마치 금광을 발견하고 당장 그 금을 옮기지는 못하지만 이 것이 곧 내 것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떠있는 사람 마냥, 책 속에 둘러싸인 나는 그런 기분을 갖고 책들을 대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 도서관은 내게 단지 책들이 많이 쌓여 있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왕 도서관을 찾았으니 읽고 싶은 책이라는 것을 골라봐야 할 터인데... 도무지 무엇을 고를지 몰랐었다. 그 때 내게 도움을 준 것이 라디오 광고 속에 등장하는 책들이었다. 서가에 꽂혀있는 책 중에서 광고에서 들었던 책이 나오면 반가워서 무심결에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독서에 빠져 들었다.

 

 그 때 접했던 '로마인 이야기'는 사실 어린 학생에게는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어찌어찌하여 겨우 1권을 읽어내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책의 내용을 읽은 것이 아니라 책 속의 글자들을 본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는 그렇게도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로마인 이야기'를 만난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였다.

 

 공강 시간에 할 일이 없으면 도서관에서 자리 잡고 별의 별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그 때 '로마인 이야기'와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시오노 나나미가 15년에 걸쳐서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겠다고 공헌하고 시간이 지났기에 어느 새 서가에 꽂혀 있는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 여러 권 분량으로 어짜피 몇 일만에 읽어낼 분량이 아니었다. 그 때 아얘 작심하고 이 시리즈를 처음부터 다 읽어주마 하고 읽기 시작했다. 1~2년에 한 두 권씩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읽기 시작했고, 2007년 드디어 마지막 권인 15권이 출간되자마자 다 읽고 나서는 오래 묵혀 놓았던 큰 과제를 해결한 기분이었다. 드디어 다 읽었다!!

 

 '로마인 이야기' 자체의 재미도 있었지만, 그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것을 공부하게 되었다. 로마라는 나라가 정치 체제를 바꿔가는 과정을 보면서 정치 체제들에 대해서 찾아서 공부해 볼 수 있었던 계기도 되었고, 포에니 전쟁 이야기를 보면서 살인마 영화의 주인공으로만 알았던 '한니발'이라는 사람에 대해 따로 찾아서 공부해 볼 수도 있었다. 그 뿐이던가 시오노 나나미가 존경한다는 '마키아벨리'라는 사람이 궁금해서 '군주론'을 사서 탐독하고 살면서 필요한 지혜를 뽑아내고자 노력했던 시간도 있었다. 어느 땐가는 시중에서 '로마'라는 제국을 통해 기업 운영 방안을 배우는 책이 나오기에 주저하지 않고 바로 사서 밑줄 그으며 읽기도 하였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의 장점 중의 하나는 책에 풍부한 사진들과 자료들을 삽입해서 마치 책을 읽고 있으면 로마사 강의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머리 속은 로마 제국의 지도가 하나씩 그려져 나가곤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렇게 마음 먹었다. 반드시 외국 여행을 나가게 되면 이탈리아를 제일 먼저 방문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 소원은 얼마 전 드디어 이루었다. 비록 첫 번째 방문 국가는 아니었지만 첫 번째 외국 여행에서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책을 통해 배웠던 그 유적들을 보고 오게 만든 것도 바로 이 책이 나에게 미친 큰 영향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내 삶에 영향을 준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이 책을 꼽을 것이다.

 

 글을 쓰다보니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이 책에 빠져 읽던 나의 모습이 머릿 속에 그려지면서 그 때가 잠시 그리워졌다. 이왕 생각난 김에 시간을 들여 다시 1권부터 읽어보아야겠다. 지금 다시 내가 이 책을 읽는다면, 그 때 읽었던 것과 같은 감흥을 느낄까, 아니면 다른 시각에서 책의 이면을 먼저 보게될까.


2011년 4월 어느 날 로마의 팔라티노 언덕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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