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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책과 영화

사랑이 다가올 때 울리는 <분홍주의보>


 첫 사랑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그 사랑이 다가왔을 때, 그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기란... 그리고 알아차려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해 내기랑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한 번이라도 겪어 본 사람이라면, 그 것이 감정으로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몸에도 미세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가만히 걸어 가다가도 갑작스럽게 웃음이 나온다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게 습관이 바뀌어서 피우던 담배를 끊기도 하고, 평소 하지 않던 피부 관리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이라는 감정은 우리 몸에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사랑이 찾아 올 때, 몸에 찾아오는 변화, 그 변화를 알려주는 주의보가 바로 <분홍주의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분홍주의보>는 태어나서 한 번도 말을 해보지 못한 소녀가 겪는 사랑의 성장통을 그리고 있는 '책'입니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책'이라 하였음은, 이 책의 장르를 '소설', '시', '일기' 중의 그 어떤 한 가지라고 꼬집어 말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감정을 알아가는 어린 소녀의 고백이 담긴 '일기'를 훔쳐보듯 서술되면서도, 그 표현력이 굉장히 시적이라서 차라리 한 권의 '시집' 같은 인상을 안겨 줍니다.

 또한 책에 가득한 일러스트와 환상을 꿈꾸는 듯한 대목을 읽다보면, 마치 성장통을 앓고 있는 청소년이나,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작가인 '엠마 마젠타'는 다소 생소한 이름입니다만, 어딘가 모르게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바로 이름인 '마젠타(분홍색)' 덕분에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이 '분홍주의보'가 되었답니다.

 원제가 'A Gorgeous Sense of Hope (희망의 아름다운 감정)'인데, 어쩌면 책의 내용상으로 보면, 사랑의 감정을 알리는 신호 '분홍주의보'라는 한국어 제목 작명 센스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굉장히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시적인' 대사가 가득한데다, 말을 하는 주체가 주인공인 소녀인지, 또는 소녀가 사랑하는 대상인지에 대한 구분이 불분명해서 책을 읽는 동안 혼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책에 가득한 일러스트를 보다가 대사를 읽고, 다시 또 난해한 그림을 보다가 난해한 대사를 읽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내용에 대한 이해가 더 어려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한 번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내용에 대한 이해가 얼른 다가오지 않더군요. 아마도 제가 이제는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알기에는 너무 퇴색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책을 읽을 때에는 책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 보았습니다.

 이 책이 '동화'처럼 쓰여졌지만... 사랑을 시작하는 소녀의 '일기'라면... 그리고 내가 직접 그 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 썼을까...

 그래서 이 책을 사랑을 시작하는 소녀가 쓴 낙서 형태의 '일기'로 생각하고 한 페이지씩을 천천히 따로 읽었습니다.
 그제서야 책에 대한 내용이 조금 이해는 가더군요.

 자신의 감정이 '사랑'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친근하게 대해주는 사람에 대한 '끌림'의 감정인지 혼란을 겪는 소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 등이 낙서와 그림 속에 그대로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책을 읽고 나니 사랑에 처음 빠졌을 때가 생각이 나더군요. 괜시리 아무 의미 없는 사물에 일부러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은 말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노트에 낙서를 하던 모습... 지금 생각하면 약간은 부끄럽고 창피한 기억들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나름 심각했던 고민...

 어쩌면 책 속의 소녀도 같은 식으로 고민을 하고, 그 고민을 책에 풀어 쓴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먼 훗날 그 소녀가 자신의 기록을 읽는다면, 지금의 저처럼 약간의 창피함 또는 어린 시절의 풋풋함을 느끼게 되겠지요.

 이제 완연한 봄 날씨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봄처럼 풋풋한 어린 소녀의 감성 고백 <분홍주의보>와 함께 즐거운 주말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