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있어서 가장 자연스러운 죽음을 우리는 '자연사'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태어남에 있어서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타살이나 자살과 같은 죽음이 아니라면, 누구나 '자연사'를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죽음은 흔히들 사회의 관심이 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 사람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만일 이 것이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게 이루어진 '타살'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완벽한 '타살'을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완전 범죄일텐 말입니다.
여기 소설 속의 주인공은 '컨설턴트'를 가장한 '킬러'입니다.
하지만,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사람을 죽이죠.
더구나, 사람이 죽었는데도 경찰에서 조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의 치밀함.
사실, 주인공은 실제로 사람을 직접 죽이지는 않는, 말 그대로 '컨설턴트'일 뿐입니다.
구조조정을 전문적으로 하는 컨설턴트이지만, 그 구조조정을 의뢰하는 조직이 어느 특정 회사가 아니라 '사회'라는 것이죠.
사회에서의 구조조정은 다름 아닌 죽음을 의미하게 됩니다.
사회로부터 당하는 구조조정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생물학적 죽음이든, 아니면 사회적인 죽음이든 간에...
주인공이 하는 일은 단순히 자연스러운 죽음을 위한 '완벽한' 시나리오 한 편을 쓰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가 '회사'라고 부르는 조직이 접수한 의뢰를 건네 받으면, 그가 '고객'이라고 부르는 자들은 그의 시나리오에 맞춰서 아주 자연스럽게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 과정을 보면, 여러 명의 주변 인물들의 사소한 행동들이 '고객'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과정이 마치 '나비효과'와 같습니다.
정말 사소한 작은 행동이지요. 설마 나의 이러한 행동이 큰 일을 불러오리라고 생각하지도 못할만큼 작은 행동.
하지만, 그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죽음'이라는 큰 태풍을 가져온다는 사실.
이 것을 조금만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의 모두가 그 누군가의 죽음을 불러오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정말로 현실 세계에서도 우리 하나하나가 '(죽음을 위한) 회사'를 위해 일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그 누군가의 죽음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게 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보면, 사회의 구성원인 '인간' 모두에게는 죄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원죄'라는 개념과 유사한 것이죠.
다만, 종교에서의 원죄가 탄생 그 자체에 있다고 보는 것이라면,
소설 속에서 주장하는 원죄는 인간이 존재하면서 저지르는 무의식적이고 사소한 모든 행동들이 다른이에게 피해를 안겨주는 것이 죄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인간 존재 자체가 '원죄'가 아닐까요.
주인공이 '회사'로부터 인정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저지른 행동에 대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라는 회피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어쩌면,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내가 하는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컨설턴트"의 작가인 임성순.
그의 첫 장편 소설은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 되었습니다.
뛰어난 상상력과, 철저한 연구가 밑바탕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세심한 묘사와 지식들.
신인 작가의 글이라고 믿어지지 않을만큼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극의 중후반부 이후부터 갑작스럽게 글의 흐름이 빨라지는 것이, 마치 글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했다는 느낌을 들게 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단순히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같은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이 더 나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살펴본 책 날개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
앞으로 소설 속의 '회사'가 배경이 되는 소설이 총 3부작으로 집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벌써부터 후속작들이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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