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ponsibility ! 책임 !
수 없이 들어본 그 말.
초등학교 바른 생활 시간에도 배웠고 중고등학교 사회 시간에도 배웠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소리는 지겹게 들었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는 소리도 어른들로부터 무수하게 들어왔다.
이제 어른이 되어서 책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말로만 듣던 "책임"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직접 짊어지고 가야할 책임.
나 자신의 삶의 주체로서 나를 이끌고 나가야할 책임.
앞으로 내가 만들어갈 가정의 가장이 될 책임.
그리고 회사에서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책임.
가만히 생각해보고 있자니 이 책임을 무사히 짊어질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문득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까봐 회피할 생각도 해본다.
그럴 때면 내 자신이 너무 나약하다는 자괴감에 빠져 한참을 우울해 하다가 겨우 회복하곤 한다.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 나이 24살에 나를 낳았으니, 아버지가 지금의 내 나이 25살이었을 때 그 때 나는 막 두 살바기 아이였다.
내 위로 형 하나를 돌도 되기 전에 잃고 그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갈 어머니와 몸도 좋지 못해서 늘 시름시름하던 나,
그리고 당시에는 아직 어리던, 아버지 밑으로 세 삼촌과 고모,
그리고 농사만 지으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의 생계를 상당 부분 책임지고 계셨던 아버지.
지금 세대 같으면, 한참 노는 일에 빠져서 정신 없을 나이에 아버지는 전봇대 위로 올라가서 전화선을 연결하고 맨홀 속으로 들어가서 선로 작업을 하며,
그 무거운 구리선 케이블을 어깨에 질질 끌고 다니시며,
그 무거운 전봇대를 옮기고 세우시며 일을 하고 계셨다.
지금의 나처럼, 많은 일에 흔들리지 않고 편히 살고 싶은 생각이 어찌 들지 않았겠느냐만은 아버지는 책임감 하나로 그 일을 묵묵히 수행하셨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나기 전에는 전화 공사 일로 전국 여기 저기를 떠돌아 다니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전라도 진도에 딸린 작은 섬... 조도라는 곳에서 어머니를 만났고 그 길로 식도 못 올리시고 우리를 키우셨다.
그리고 전화 공사 일을 하기 더 전에는 일을 하겠답시고 14~5살 어린 나이에 짐꾼 일을 하며 서울에 다니셨다고 한다.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고된 일을 하며 살아오신 분이다.
지금처럼 아버지, 어머니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전에는 자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셨다.
그럴때면 간혹 아버지가 해주시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당신께서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낳아서 기를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당신이 가지신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더 늙어서 도움이 되지 못하기 전에 우리가 장성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가 대학 나올 때까지는 당신의 힘으로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낳고 기르셨다고 한다.
정작 이렇게 자라서는 고작 지금처럼 밖에 행동하지 못하는 자식을 위해 당신의 젊음을 바치셨다는 생각에 못내 안타깝고 한 없이 고마운 마음 억누를 수가 없다.
그래서 힘이 들 땐...
내게 주어진 책임이 너무 무겁다고 느낄 때는 한 번씩 아버지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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