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1년 전 이 맘 때 쯤에는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게 해 주었던 첫 직장에서의 퇴사를 준비하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퇴사를 하고 무엇인가를 새로 해보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겠다는 계획이나 일정이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말 그대로 무모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퇴사를 결정하고 나서도 각종 절차를 거치고, 그 와중에서 겪은 작은 오해들로 힘들기도 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나름 차근차근 준비하던 것이 있었으니, 30일간의 유럽여행 계획을 세우고 결국 실천으로 옮긴 것이다. 그때의 짧은 여행 경험은 현재까지의 삶에 있어서 굉장히 강렬한 충격이었다.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한참이 지나서도 여행에 대한 갈망은 더 깊어만 갔고, 1년이 다 되가는 지금에 와서 다시 또 여행을 가고 싶어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나폴리 ⓒ 더팬더
여행이 너무.. 가고 싶다..
한 3주 전 부터인가...
여행이 너무 가고 싶어져서 정보를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당장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정보만 모으면서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점점 도져가는 여행병을 잠재우기 위해 선택한 것은 다른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읽으며 대리 만족이라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여행기를 위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들어왔던 책이 하나 있었다.
흔한 관광 명소가 아닌 작은 마을 여행기
여행과 관광.
두 단어의 원래 뜻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냥 나에게 느껴지는 두 단어의 차이라면 능동과 수동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다.
관광이라는 단어가 유명한 곳이나 귀중한 예술품들을 단순히 보고 다니는 것이라는 느낌인 반면, 여행은 거기에 추가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의견, 그리고 또 다른 영감이나 귀중한 체험들이 포함되는 종합적인 인생 경험이라고 할까...
『유럽, 작은 마을 여행기』는 유럽 여행하면 흔하게 떠오르는 대도시처럼 일반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현지인들의 삶을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고, 남들이 미처 해보지 못한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작은 유럽 마을들에 대한 '여행'기이다.
흔하지 않은, 그래서 더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드는 『유럽, 작은 마을 여행기』
사실 이름을 들어보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그런 도시들이지만, 막상 '파리', '런던'이나 '로마'처럼 흔하게 알려져있지 않은, 그래서 일생에 몇 번 없을 유럽 여행의 기회에서 직접 볼 기회조차 많지않은 도시에 대한 여행기는 접하기가 쉽지 않다.
마침 지난 유럽 여행에서 관광지들 위주로 밖에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서 다음 여행에서 비슷한 컨셉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차에 딱 내가 찾던 그러한 책을 찾은 것이다.
가족과 함께 떠나는 작은 마을 여행
책의 저자는 가족들과 함께 자동차로 작은 마을을 찾아서 다닌 여행의 기록을 전한다.
젊은 나이에 혼자서 다니는 여행이 아닌 가족들과 함께 떠나는.. 그것도 자동차를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마을을 찾아 다니는 여행을 하는 모습이 사뭇 부러울 뿐이다.
기껏해야 기차나 버스 등을 이용하는 대중 교통 수단에 의지해서 떠났던 여행에서는 당연히 여행지 선택의 자유도가 그만큼 줄어들게 마련인지라, 책을 읽으면서 내가 떠났던 여행과 자꾸 비교를 해볼 수 밖에 없게 되고, 왜 자동차를 빌려서 마음껏 떠나는 여행은 생각해보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을 가지게 된다.
2011년 유럽 여행에서 만난 도시 '피렌체'. 다음 여행에서 만날 작은 마을들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 더팬더
저자가 여행을 다니면서 만나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작은 마을들 이야기를 읽으면서 머리 속으로는 동화나 고전 속에서의 모습들을 함께 상상해 보게 된다.
신 중심 사상 속에서 여러 영주들이 나누어 다스리던 중세 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작은 성채 도시들의 모습을 만일 직접 보고 있다면 어떤 느낌을 갖게 될 것인가. 저자와 마찬가지로 신에 대한 생각에 잠기며 기도를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어떠한 감상에 젖을 것인가 궁금하기도 하다.
또한 고흐나 세잔이 살았던 마을에 가면 또 어떠한 감상을 느낄 것인가.
'아를'의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 나도 저자처럼 고흐의 '해바라기' 속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받을까. 사뭇 궁금해지면서 가보지 못한 또 다른 예술의 도시에 대한 동경이 생긴다.
책을 통해 알게된 새로운 여행지들을 보면서, 동시에 가고 싶은 여행지 리스트에 마을 이름이 하나씩 추가가 된다.
책 속엔 각종 현지 음식에 대한 소개가 자주 등장한다. 한 밤중에 읽으면 식욕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치즈 이야기에 공감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저자가 스위스의 '베기스'라는 곳에 갔을 때 겪은 경험담 중에 「모둠 치즈의 신세계」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호텔에서 모둠치즈를 먹으며 느낀 맛의 감상을 적어 두는 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네덜란드의 델프트에 갔을 때 발효 치즈 냄새로 쪄든 전통 치즈가게에서 코를 막고 뛰쳐나온 적이 있었는데 만일 지금 그곳에 다시 간다면 제대로 된 치즈를 맛보고 고를 수 있으리라. - p.173 -
저자가 발효 치즈 냄새에 코를 막고 뛰쳐나왔다는 부분에서 입가에 웃음이 흘러나오면서, 순간 묘하게 스위스의 '인터라켄'에서 치즈 퐁듀를 먹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당시 먹었던 치즈는 한국에서 접하는 치즈와 달리 엄청 강한 냄새와 맛이 거의 나의 후각과 미각을 마비시켰던 기억이 난다. 너무 강렬해서 당시에는 조금 꺼려지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도 이 책의 저자처럼 이제는 그런 치즈를 맛 보아도 놀라지 않고 충분히 음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물론...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네덜란드의 풍차마을. 지난 유럽 여행에서 만난 몇 안 되는 작은 마을. ⓒ 더팬더
책으로 떠나는 여행 대리 만족
앞서 말했듯이 최근 급격하게 높아진 여행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고 싶지만, 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여러 조건들 때문에 마음 놓고 여행을 떠나기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선택한 여러권의 여행 서적들.
그 중에서도 내가 추구하는 방식과 비슷한 여행을 먼저 떠난 여행 선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책으로나마 간접 여행 경험을 대신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표시해 두었던 새로 추가된 여행지 Wish List를 보면서 언젠가 반드시 꼭 가보리라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그 때의 내가 느끼는 감성 역시 세세하게 기록해두었다가 이렇게 여행기로 남겨두고 싶다. 기록을 남기는 건 좋아하지만 늘 정리할 자신이 없어서 쌓아둔 이야기들과 함께 한 편의 장편 여행기가 완성될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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