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1층만 보면 관람 끝?
지난 토요일 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한 달에 두어 번은 다녀오다보니 박물관이 마치 동네 서점처럼 친근하고 포근하게 느껴집니다. 마침 이 날은 매달 넷째 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M20(국립중앙박물관 명품 20선)'을 주제의 강연이 있어서, 강연도 듣고 관련 유물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날이었죠. (관련기사 : 국립중앙박물관 토요특강 '인문학, 함께 공감하다')
강연을 듣고 나서 이 날의 주제였던 '기마인물형 토기'를 자세히 보기 위해 신라 전시실로 들어섰던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귀여운 꼬마 아이와 아빠의 대화가 들려오더군요.
"아빠! 세종대왕은 언제나와?"
"응. 세종대왕은 조선시대로 가야 돼. 아직 삼국시대니까 순서대로 천천히 가면서 보자꾸나."
대답을 들은 아이는 벌써부터 지겹다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과 작은 투정을 부리며, 아빠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졸졸 아빠를 따라가기에만 바쁘더군요. 문득 어린 날 소풍으로 찾았던 박물관에서의 기억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으니까요.
박물관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역사 순서대로 1층에 위치한 전시실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야 의욕적으로 보지만, 얼마 지나고 나면 슬슬 몸이 지치게 되죠. 그러다 결국엔 1층의 전시실을 한 바퀴 보고나면, 차마 위 층으로 올라갈 생각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박물관에서 각 층을 산책하다시피 돌아다니면 관람객 수가 차이 나는 것을 한 눈에 알 수가 있습니다.
어쩌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우려스럽네요.
"박물관은 1층만 관람하면 끝 아닌가?"
박물관에서 아시아의 문화를 배운다!
프랑스나 영국을 여행하신 분 중에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 박물관을 방문해보신 분이 계시다면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보신 분도 계실 겁니다.
"와! 정말 멋진 곳이다! 그런데... 왜 다른 나라 유물과 미술품이 이리도 많은 것이지?"
이 두 곳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전시실에는 대부분 영국과 프랑스 것이 아닌 해외에서 수집해온 유물들이 대부분입니다. 두 나라가 가장 강성하던 시절에 세계 각지에서 모은 유물들을 전시한 만큼 진귀한 것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기 때문이죠. 유물을 모은 과정이나 본래 고향으로의 반환 문제가 대립 중이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부러운 점은 프랑스인과 영국인들은 굳이 외국으로 직접 나가지 않아도 외국의 문화를 쉽게 접하면서 공부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떨까요? 역사적으로 우리는 바다 건너 외국 땅을 침범해서 오래도록 정복하거나 약탈을 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외국의 유물을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오랜 옛날 그 당시에도 이미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나라로 들어오게 된 유물들은 지금도 간간이 발굴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양은 지극히 미미하기에 외국의 유물들이 우리 나라에 존재하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다른 나라의 유물들을 대거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답니다. 매년 특별 기획으로 진행하는 외국 유물전이 아님에도 항상 박물관을 방문할 때마다 외국의 유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지요. 바로 상설전시관 3층에 위치한 '아시아관'을 방문하면 중국과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의 유물을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비록 아시아라는 지역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역사와 직간접적으로 항상 영향을 주고 받았던 주변 나라들에 대한 문화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특히나 어린 학생들에 대한 교육의 차원에서 생각해 볼 때, 문화의 다양성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가르치는 것만큼 중요하기에, 박물관을 방문한 학생들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를 살펴보고 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람객들이 3층에 위치한 전시실의 존재를 모른 채 관람을 마치거나, 알면서도 미쳐 보지 못하고 그냥 가버리는 경우를 보면 안타까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관에서 어떤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일까요? 간단하게 각 전시실 구성을 살펴보고 나면 아시아관에 대한 흥미가 생겨서 다음 번 방문에는 꼭 한 번 찾아보는 관람객이 많아지기를 기대하면서, 각 전시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보려고 합니다.
인도의 신들과 만나는 곳 : 인도-동남아시아 전시실
인도는 참으로 많은 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현재 인도의 국교인 '힌두교'에서 믿는 신들은 물론이고, 과거 불교가 중흥하던 시절의 불교의 신들과 여러 토착 신들까지도 모두 인도인들의 삶 속에서 숭배하는 신으로 모셔지고 있지요. 심지어 우리 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소'의 경우 인도에서는 신과 동급으로 우대받아 소를 죽이는 것은 신성을 더럽히는 것과 같다고 여겨진다고 합니다.
이처럼 각양각색의 신들이 존재하는 나라답게, 인도와 그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유물을 살펴보면 여러 종류의 신들의 모습을 새긴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팔과 다리, 심지어 머리까지 여러 개인 신도 있고, 여러 가지 동물 모양을 한 신도 있습니다. 그 중에는 부처님을 닮은 모습의 신도 있답니다.
힌두교의 3대 신 중 시바와 파르바티의 조각상 ⓒ 더팬더
각종 신을 새겨넣은 인도-동남아 전시실의 유물 ⓒ 더팬더
몇 년 전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는데요. 신화는 그리스와 로마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특히나 신들이 많은 인도에도 당연히 인도 신화가 있습니다. 만일 인도 신화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 있다면, 신화 속의 신들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는지 직접 살펴보는 재미가 있겠지요. 뿐만 아니라 교과서에서 말로만 듣던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은 유물들이 어떤 것인지도 확인하면서 교육적 효과까지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말로만 듣고 책 속에서만 보는 것보다 직접 찾아가서 보는 것이 훨씬 더 기억에 남을테니까 말입니다.
아시아의 중심에서 만난 이슬람 : 중앙아시아 전시실
인도-동남아 전시실 바로 옆에는 중앙아시아 전시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에 어떤 나라들이 존재하는지 잘 감이 안 오기도 하는데요. 그만큼 친숙하지 않은 지역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중앙아시아에 속한 나라들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처럼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이는 페르시아어로 지방 또는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 곳에 있는 나라들은 대체로 이슬람교를 믿고 있답니다. 현재에 와서는 이슬람교를 믿지만, 과거에는 이 곳에도 토착 종교나 주변 국가에 의한 다른 종교적인 영향을 받아서 탄생한 문화도 존재했었답니다. 다만 현재에 와서는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교의 특성상 옛 문화 유물을 찾아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죠.
중앙아시아 전시실에는 이 지역의 과거 유물들과 현재의 삶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답니다. 우리에겐 생소한 지역이지만 엄연히 아시아 속에 속하는 이웃 나라들인만큼 관심을 가지고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겠지요.
중앙 아시아 지역의 유물 ⓒ 더팬더
현재 중앙 아시아 사람들의 거주지를 재현한 모습 ⓒ 더팬더
가까운 이웃 나라의 문화 : 중국 전시실과 일본 전시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불리우는 중국과 일본의 문화도 아시아 전시관에서 빼놓을 수 없겠지요.
중국 전시실에서는 색채감이나 장식미가 가미된 불상이나 도자기들의 유물을 볼 수 있답니다. 전시실에 들어서서 유물만 딱 보고도 중국 유물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중국 문화에 대해서는 우리들에게 친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 중국의 도자기 유물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도자기 유물들과 어딘가 유사한 듯 보이면서도 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그 미묘한 차이들을 비교하면서 관람한다면 우리 문화와 중국의 문화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비교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중국식 느낌이 한 번에 풍겨오는 말 모양 장식 ⓒ 더팬더
중국 도자기 ⓒ 더팬더
중국의 도자기들 ⓒ 더팬더
우리와 툭하면 역사 문제 및 독도와 관련한 문제로 시끄러운 일본도 우리의 이웃 나라 중에 하나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한국, 그리고 일본으로 전해지는 문물의 전달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일본은 우리와 중국의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역시 우리와는 확연하게 다른 문화적 특성을 많이 지녔지요. 같은 문화가 전파되어도 그 지역 특색에 맞게 변형되어 발전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 중의 하나인 무사(사무라이) 문화를 엿볼 수 있도록 옛 무사들이 사용하던 갑옷과 무기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감과 영향을 주었던 일본의 우키요에(17~20세기 초에 유행한 일본식 풍속화)도 볼 수 있는데, 우리의 민화와 함께 관람하면서 양국의 문화적 차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사무라이 갑옷과 칼들 ⓒ 더팬더
일본 전통 옷과 가면들 ⓒ 더팬더
일본식 민화인 우키요에 ⓒ 더팬더
이렇게 아시아관에 속한 전시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모두 마쳤네요. 이제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에 방문할 일이 생기게 된다면, 1층에서만 관람하고 끝내는 일은 없겠지요?
2층과 3층 전시실에는 아시아관 외에도 공예 유물이나 불상, 회화 작품등 귀중한 유물들도 테마별로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답니다. 특히 정기적으로 테마 전시가 이루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방문할 때마다 한 번씩은 꼭 들러 보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해 봅니다. 모든 전시실을 하루만에 보는 것 역시 어렵기 때문에 기회가 허락할 때마다 자주 찾아와서 매번 다른 전시실을 찾아다니며 관람하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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