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창덕궁, 경운궁(덕수궁), 창경궁, 경희궁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 시대의 다섯 궁궐의 이름이다. "서울에 저렇게 많은 궁궐이 남아 있어?"라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사실이다. 다만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이 많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 원인에는 일제 시대 때 철저하게 우리 문화를 파괴했던 아픈 역사와 해방 후에도 이어진 무관심이 한 몫 거들고 있다. 우여곡절을 겪은 통에 제 모습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 뿐더러, 남아 있는 궁궐 건물의 대부분이 현대에 와서 복원된 모습이지만, 그래도 조선의 궁궐은 엄연히 우리의 곁에 남아 있는 소중한 문화 유산이다.
궁궐에 관심을 갖고서 한 동안 궁궐에 제 집 드나들듯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역사학과는 거리가 먼 공학도 출신인 나로서는 늦게 관심을 갖기 시작 우리 나라의 역사와 문화재에 대해 배워간다는 것이 큰 흥미로 다가왔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궁궐 안내서와 역사학 관련 교양 도서를 읽어가며 궁궐을 돌아다니는 일은 큰 즐거움이 되었고, 내가 느낀 즐거움을 다른 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서 언젠가는 블로그로 시리즈물을 한 번 써보겠다고 다짐하며 차근 차근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이하 궁궐기행)을 발견하다.
궁궐에 대한 자료 수집을 하면서 교양서를 뒤지다 정말 기막힌 사실을 발견했다. 그때까지 내가 구상하고 있던 글의 구성과 비슷한, 아니 정확히 말해서 똑같은 책이 이미 시중에 나와 있을 줄이야. 각 궁궐의 대문 비교에서 부터 금천, 정전, 그리고 편전 및 침전 비교를 하려는 구성과 중간 중간 쉬어가는 코너처럼 짤막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구성까지 완전히 똑같았다. 만약 내가 원래 하려던 대로 글을 썼다면, 열의 아홉은 '표절'이라며 비방했을 것이다. 놀람과 동시에 실망도 컸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더 좋은 글 솜씨로 더 많은 독자들에게 궁궐을 알리고 있는 책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
풍부한 사진 자료와 재미있는 일러스트, 그리고 쉬운 필체는 어른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더 읽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학교에서 칠판 앞에서만 배우는 딱딱한 역사가 아니라 임금이 살던 궁궐에 대해 이렇게 자세한 설명을 읽고 있으면 누구라도 우리 문화에 대한 흥미가 저절로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책 마지막에 정리된 속성 답사 포인트는 궁궐을 관람할 때 더욱 의미 있게 관람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구성해 놓았다.
또한 우리가 '덕수궁'이라고 잘못 부르고 있는 '경운궁'에 대해 시종일관 경운궁으로 표기하고 있어서 책을 다 읽은 독자에게 어느 새 덕수궁 대신 '경운궁'이란 이름이 더 친근하게 다가 온다.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저자의 세심한 마음이 엿보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궁궐에 있는 석물을 가리켜 중국의 그것과 달리 쓰다듬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고 표현했는데, 궁궐에 놓여진 석물들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마치 개구장이처럼 생긴 석물들이 임금을 지키겠다고 자리에 떡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번진다.
굳이 석물이 아니더라도 궁궐을 돌아다니면 재미있는 보물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건물 구조물 하나하나마다 숨겨져 있는 사연을 들추고 다니다 보면 의외의 사실들을 많이 알 수 있다. '궁궐기행'은 그렇게 숨겨져 있는 보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는 훌륭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화창한 봄날이 계속되고 있다. 주말이 되면 가족, 연인과 함께 고궁 나들이 하러 가는 것은 어떨까? 나들이 가방 한 구석에 '궁궐기행'을 들고 간다면 단순한 나들이로 그치지 않고, 궁궐에 대해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 문화에 대해 관심을 넓혀 가는 것이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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